프랑스 리포트/책

프랑스의 문학상(1999년 겨울)

빠리 정병주 2007. 5. 21. 07:18
 

          프랑스의 문학상과 가을 문학계


  전세계의 가을철 문학계를 흥분시키는 1999년의 노벨 문학상은 독일의 참여작가 귄터 그라스에게 돌아갔다. 프랑스의 가을도 문학상의 열기로 뜨겁기만 하다.

  7,8월의 긴 바캉스에서 제자리로 돌아온 프랑스의 방송과 언론은 노동자의 파업 소식과 문학상 소식으로 가을을 알린다. 신문들은 바캉스 철에 접어들면 독자들이 휴가기간 읽을 책 목록을 작성한 후 바캉스에 들어가서, 바탕스 기간 문학란의 주요 필자들은 기사조차 쓰지 않는다. 그러나 가을이 시작되면 문학이 매스컴의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어 주요 문학상의 수상 후보들이 연이어 전해지고, 수상자가 점쳐진다. 문학을 홀대하던 태도를 반성이나 하듯이 적어도 가을에는 문학에 힘을 실어준다.

  공쿠르상(Prix Goncourt), 페미나상(Prix Fémina), 엥테랄리에상(Prix Intérallié), 르노도상(Prix Renaudot), 메디치상(Prix médicis) 등 주요 문학상들이 이 계절에 발표되어 출판사와 작가, 비평가, 독자들을 흥분시킨다.

  잡지 『퀴드(Quid)』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프랑스에는 1,500여 개의 문학상이 존재하는데, 대략 5-6개의 문학상만이 중요한 것으로 거론된다. 공쿠르상은 50프랑(약 10.000원)의 믿기 어려운 적은 상금을 지급하지만 프랑스 문학상중 최대의 명성을 자랑하는데, 공쿠르 형제 소설가의 유언에 따라 1903년부터 매년 그해의 소설에 주어진다. 수상작 심사위원들(아카데미 공쿠르)은 프랑스의 학술원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위원들보다 더 명성이 높을 정도이다. 200여 작품 중에서 매주 예선 통과작품을 발표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11월에 발표한다. 수상자에게는 수상식장인 파리의 드루앙(Drouant) 식당에서 점심 식사가 제공되고, 팁은 심사위원들이 대신 내주는 재미있는 전통도 있다. 수상작은 매년 평균 약300.000권 정도가 판매되어 작가와 출판사는 한해에 각각 약 8억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푸르스트의 『아름다운 처녀들의 곁에서』, 말로의 『인간의 조건』, 뒤라스의 『정인(情人)』,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얀 크펠렉의 『야만의 결혼』 등이 우리에게 알려진 역대의 수상작이다.

  공쿠르상과 쌍벽을 이루는 페미나상은 공쿠르상의 남성주의에 반대하여 1904년부터 여성 문학인만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수상작을 결정한다. 로멩 롤랑의 『쟝 크리스토프』, 로베르 펭제의 『어떤 사람』 등이 주요 수상작이다.

  엥테랄리에상은 1930년 페미나상의 선정 발표를 기다리던 문학기자들이 제정한 것으로, 상금은 없으며 수상자는 다음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권한이 부여되며, 주로 기자 출신 작가에게 수여된다. 역대 주요 수상작으로 말로의 『왕도』, 폴 니쟝의 『음모(陰謀)』 등이 있다.

  르노도상은 1925년 공쿠르상의 실수를 보충하고 교정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주로 젊은 작가나 잘못 평가되고 있는 작가에게 수여된다. 상금 없이 점심 식사가 제공되며 수상자는 다음해의 수상자에게 상을 수여하는 영광이 주어진다. 셀린느의 『밤으로의 긴 여행』, 루이 아라공의 『아름다운 마을』, 미셸 뷔토르의 『변모』, 르 클레지오의 『조서(調書)』, 조르쥬 페렉의 『사물』등이 주요 수상작이다.

  메디치상은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에서 무시되는 전위소설을 위해 1958년에 제정된 것으로 작가, 비평가, 문학기자로 구성된 11명의 심사위원이 선정하며, 상금은 4,500프랑이고, 특히 페미나상의 보수성에 반대하여 같은 날 수상작을 발표하며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의 『공원(公園)』, 클로드 시몽(Claude Simon)의 『이야기』, 엘렌 식쑤의 『내부(內部)』 조르쥬 페렉(Georges Perec)의 『삶-사용법』 등이 주요 수상작이다.

  이밖에 여성지 『엘(Elle)』에서 1970년부터 제정한 엘 문학상은 120명의 여성독자들에 의하여 선정되어 매년 5월에 발표되고, 라디오-프랑스 방송에서 1975년부터 시작한 리브르 엥테르상(Prix Livre Inter)은 매년 5월이나 6월에 발표하며, 24명의 시청자와 저명한 작가 1명이 참여하여 선정을 하는데, 특별방송을 제작하고 작품광고를 마련해주어 페미나상과 공쿠르상에 육박하는 판매 부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이 두 문학상은 타 문학상과는 다르게, 심사위원들의 복잡한 연고 관계에서 생길 수도 있는 잡음에서 벗어나 독자가 직접 수상작을 선정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작가, 출판사, 비평가, 독자 등 문학에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문학상은 영향을 미친다. 출판전문 주간지 『주간 도서(Livres Hebdo)』에 의하면, 올 가을에 프랑스 국내 소설 334권(신인의 데뷔작 75권 포함)과 번역소설 167권, 총 511권의 신간소설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플라마리옹(Flammarion), 갈리마르(Gallimard), 그라쎄(Grasset), 르 세이유(Le Seuil), 알벵 미셸(Albin Michel), 르 로쉐(Le Rocher) 등 대형 출판사들은 약 10여권씩, 나머지 중소 출판사들은 1권에서 5권 정도의 소설을 출간하였다. 가을철 출간 도서 1,000여권 중 반 이상이 문학작품이라니 문학의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한해가 지나면 보통 약 30여 편 정도가 읽을 만한 작품으로, 10여 편이 우수작으로 살아남고 나머지는 서점의 진열대에서 사라진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의 상이라도 걸머지어 책표지에 무슨 무슨 문학상이라는 붉은 띠를 둘러야 독자의 눈에 뜨이고, 크리스마스 선물로도 선택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출판사는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출판인과 비평가는 작품을 선별하는 감식력을 확인하기 위해, 독자는 그 많은 책들 속에서 읽을만한 것을 선별하기 위해 이맘때 발표되는 문학상 발표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소설을 쓰는 사람(대부분이 기자이거나 교사, 교수)은 글쓰기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처음부터 마음먹지 않았기에 문학상에 초연할 수 있다해도, 출판사는 책이 팔리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하기에 문학상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 계절엔 어떤 출판사가 문학상 수상을 위해 심사위원을 매수했다는 소문이 난무하고, 어떤 출판사가 다른 출판사로부터 재능 있는 작가를 스카웃하기 위해 몇억 원을 들였다는 얘기가 문학동네를 흘러다닌다. 그러나, 많은 신간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아예 이 기간에 신간을 내지 않는 문학상에 초연한 출판사도 있고, 자신 있는 소설 한 권만을 내며 상을 노리는 모리스 나도(Maurice Nadeau)와 같은 올곧은 출판사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학상의 심사위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300여권의 신간 소설을 도저히 다 읽어낼 수도 없고, 대형 출판사들이 가을철 문학상을 위해 1월부터 준비한 치밀한 마케팅 전략에 휘말릴 위험도 있다. 출판사들은 재능 있고 신선하고 다양한 작가를 선택하여 작품을 다듬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출판사가 모여있는 생제르멩 데 프레 지역과 언론에 소문을 띄우기도 하고, 때로는 스캔들을 연출하여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심사위원이 소문을 따라가면 기회주의자라 손가락질 당하기 쉽고, 이름 없는 신인을 선정했다가 수상작이 오래지 않아 서점에서 사라질 위험도 있다. 수상작이 발표되면 곧이어 찬사와 비난, 모함, 논쟁, 토론이 줄을 잇는데, 1998년의 경우 공쿠르 수상작은 갈리마르 출판사의 우엘벡(Houellebecq)의 작품『원소들(Eléments particuliers)』에 판매 부수면에서 완패하였다.

  주요 문학상은 대형 출판사가 거의 독점하는데, 특히 〈갈리그라쎄이유(Galli-Gras-Seuil)〉라 불리는 갈리마르, 그라쎄, 세이유 등 전통 있는 대형 출판사가 거의 돌아가며 독점하고, 가끔씩 미뉘(Minuit) 출판사 등의 중형 출판사와 POL, 롤리비에(L'Olivier), 악트 쉬드(Acte Sud) 등 소형 출판사가 수상하여 편집능력과 감수성을 과시하며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출판전문가들은 문학상에 따라 심사위원들의 기호가 다른 것을 인정하지만, 각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면서 베스트 셀러의 출판을 꿈꾼다. 델리케이트한 감정을 가진 작중인물의 해피엔드적 줄거리를 고전적인 이야기 형식에 담고, 작품의 양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약 200이나 250페이지 정도의 작품을 심사위원들은 좋아한다고 하며, 수상자가 미모의 여성작가로서 에꼴 노르말(고등사범학교) 출신이나 저명한 신문사의 기자로서 약간 피곤한 듯하고 우수에 찬 옆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그 수상작은 베스트 셀러의 대열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라 전문가들은 점친다.


  문학상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뒤로하고, 어쨌든 문학상, 작가의 방송출연, 비평가의 평론, 문학기자의 논평기사, 신문 잡지의 판매 부수 통계 등은 독자의 책읽기와 판매 부수에, 그리고 작가의 글쓰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젠 신문 방송 잡지 등의 대중매체의 강력한 영향력과 자본주의적 상품 시스템 속에서, 문학의 출판-편집-유통구조와 수용체계를 고려하면서 문학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문학의 다양한 모습을 파악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 일수록 문학에 관련된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평가, 문학기자, 출판인의 직업적 윤리의식과 책임이 요청되며, 근거없는 소문과 선전에서 비켜서서  자기만의 눈으로 작품을 읽어 보려는 독자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소문과 소비의 〈광장〉을 벗어날 수 없는 시와 소설을 어떻게 조용히 〈밀실〉에서 읽어야 하는가 그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이다.

(1999년 겨울, 라쁠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