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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카페, 은밀한 욕망이 세상 밖으로

빠리 정병주 2008. 2. 15. 20:20

Cafe… 은밀한 욕망이 세상 밖으로(매일경제, 허연 기자)

보통 인간은 8시간은 자는 데 쓰고, 8시간은 일하는 데 쓰고, 나머지 8시간은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자유로운 8시간 동안 사람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곳이 카페다.

커피와 술을 파는 카페는 18세기 이후 인간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공간이다. 카페는 사랑의 공간이자, 지식소통의 공간이었고, 예술의 현장이자 정치 토론장이었다. 따라서 카페의 문화사를 이해하는 일은 봉건사회가 끝날 무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 욕망과 소통방식의 진화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작업이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크리스토프 르페뷔르의 '카페를 사랑한 그들'(효형 펴냄ㆍ강주헌 옮김)은 이념과 사랑과 예술이 무르익은 장소였던 프랑스 카페의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카페(cafe)는 프랑스어로 커피라는 뜻이다. 17세기 말 커피가 프랑스에 수입되면서 길거리에 커피를 마시는 집이 하나 둘 생겨났고, 이것은 귀족, 도시 부르주아, 노동자, 시골 농부 등 모든 사람들의 여가문화를 바꿔버렸다. 누군가의 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던 게 전부였던 사람들에게 누구의 집도 아닌 자유로운 공간이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았다.

카페는 은밀한 만남을 갖기에 적합한 장소였고, 소문을 퍼뜨리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자연스럽게 카페는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프랑스 혁명주체들은 정파별로 팔레 루아얄, 카페 드 발루아, 카페 드 푸아 등에 모여 혁명을 꿈꿨다. 혁명세력들이 모자에 초록색 잎을 꽂고 바스티유 함락을 위해 출발했던 장소가 바로 카페 드 푸아였다.

혁명의 불길이 수그러들면서 카페는 상업적인 여가 중심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카페는 여러 가지 별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비스트로' '뷔뷔' '세나' 등 용어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카페는 또 교회의 숙적이었다. 교회는 시골 농부들이나 서민들이 일을 끝내고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고 목을 축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카페를 유희의 장소로 본 것이다. 게다가 헌금으로 낼 돈을 술값으로 날린다는 안타까움도 작용했을 것이다. 결국 성직자들은 카페 영업을 제한하는 법 제정을 정부에 요구했고, 1814년에 인구 5000명 이하인 마을에서는 예배시간에 영업을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19세기 중반부터 카페는 예술가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많은 화가와 작가들이 카페에서 예술을 토론했고, 영감을 얻었다. 시인 베를렌, 보들레르, 랭보를 비롯해 화가 마네, 모네, 드가, 고흐, 모딜리아니 등에게 카페는 창작의 원천이었다. 동시에 카페는 철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훗날 20세기 철학을 주도한 사르트르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 역시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카페를 사랑한 그들` 크리스토프 르페뷔르 지음, 효형 펴냄
여성들에게 카페는 해방공간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같은 장소에서 여가를 보내는 것 자체를 백안시하던 시절 카페는 그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여성들은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들 대화에 낄 수 있었고, 술을 마실 수도 있었으며 정치나 예술에 대한 생각을 피력할 수 있었다.

카페는 외로운 사람들의 피난처였다. 낯선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흠이 되지 않는 장소였다.

초창기 카페 웨이터들은 단순히 봉사원이 아니었다. 독특한 재치와 해학을 지닌 대화 상대이자 정치적 견해와 예술적 영감에 대한 최초 감상자이기도 했다. 몇몇 웨이터들은 프랑스 사교계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물론 카페의 폐해도 있었다. 음주와 도박, 성적 문란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별도의 술집과 도박장, 매춘장소가 늘어나면서 카페는 순수한 여가의 상징으로 다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프랑스 카페문화는 이제 뛰어난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은 오래된 의자에 앉아 예술가가 된 듯이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는 걸 즐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프랑스의 카페 문화를 보고 놀란 나머지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프랑스 카페들마다 작은 공연이 열리고, 시가 낭송되고, 토론이 벌어진다. 어림잡아도 프랑스 국민 중 5분의 1이 매일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교양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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