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이 오면 와인 애호가들은 작은 이벤트를 기다린다. 이름하여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11월 세째주 목요일 전 세계 동시 출시. (올해는 11월20일)
프랑스에서 시작한 이 이벤트는 이제 전세계에서도 적잖은 팬을 갖고 있다. 어떤 이는 마치 프랑스인처럼 이 행사를 기다리기도 하고, 반면 어떤 이는 애써 프랑스의 상술을 폄하하기도 한다.
보졸레 누보는 가메이(Gamay)라는 포도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품종은 정통 와인 품종과 비교한다면 못난이나 미운 오리새끼 정도로 생각되던 마이너리티 품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가메이 포도가 '보졸레 누보 에 따리베(Beaujolais nouveau est arrivé, 보졸레 누보가 방금 도착했어요)'라는 표어와 함께 전 세계적인 보졸레 누보 열풍을 일으키는 주역이 되었을까?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보졸레누보의 역사를 다시한번 되짚어보자.
부르고뉴의 마이너리티, 보졸레
보졸레 지역은 프랑스 최고의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부르고뉴의 남단, 리옹 시 위쪽에 위치한다. 그러나 이곳은 프랑스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 와인 생산지에 속하면서도 최고의 레드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가 제대로 재배되지 않는 지역이다. 오히려 저가의 가메이 품종이 보졸레 지역 토양과 잘 어울렸기 때문에, 가벼운 맛의 와인을 주로 생산할 수 밖에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와인의 가벼움'이라고 할 수 있는 가메이 포도 품종의 한계로 인해, 이 지역에서는 보르도나 부르고뉴처럼 장기 보관, 숙성 가능한 고급 와인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보졸레 와인은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민을 위한 값싼 와인으로 인식되었다. 리옹의 대중 레스토랑이나 동네 바에서 카라프(유리병)에 넣어 팔리는 저가의 와인이었던 것이다.
조르쥐 뒤뵈프의 뒤집기 한판
여기에 한 명의 영웅이 등장하는데, 그가 보졸레 누보의 황제라 불리는 조르쥐 뒤뵈프이다. 그와 보졸레 지역의 농부들은 뒤집어서 생각하기, 즉 위기를 기회로 삼는 발상의 대전환을 단행했다. 이른 바 '보졸레 햇 포도주 전략'이다. 이것은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기록될 만한 엄청난 유행을 창조했다.
보졸레 누보는 오래 묵힐 수 없다는 가메이 품종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었다. 오히려 빨리 만들어서 금방 마시게 하자는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전 세계 비행기 공수라는 기가 막힌 상품 출시 전략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보졸레 누보는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새벽 0시 이전에는 팔 수도 살 수도 없다."
아니, 과거 어느 세상 어떤 상인이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때가 되기 전에는 팔지 않겠다는 황당무계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기꺼이 이 말도 안되는 판매 조건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이벤트이자 'Fun'으로 포장되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와인산업에 있어서 'Fun'경영, 'Fun'마케팅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보졸레 누보의 역설적 이벤트로 인해 보졸레 지역 농민들은 장기 저장이 필요없으므로 자금회수도 빨라졌고, 재고 걱정도 덜게 되었다. 또한 이 지역은 보르도만큼 유명해져 조르쥐 뒤뵈프는 100년 된 마을 기차역사를 박물관으로 개조해 보졸레를 홍보하면서 짭짤한 관광수입까지 벌어들이고 있다.
그 뛰어난 마케팅 전략에도 불구하고 보졸레 누보가 단지 유행만을 만들어내고자 한 와인이었다면 전 세계에서 그렇게까지 사랑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졸레 누보는 '전 세계인의 즐거움'을 대변하는 브랜드로서 교제와 우정을 상징하고 있다. 무엇보다 마시기 어렵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특히 초보자가 시작할 수 있는 레드 와인으로 각광받고 있다.
단점을 강점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보졸레 누보의 역발상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곱씹어 볼만한 이야기로 남는다.
(*) 이 글은 파리의 교민지 한위클리 2008년 11월 13일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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