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부패집단, 우익 민병대의 '일탈' -콜롬비아 우익 민병대 스캔들
로랑스 마쥐르
2006년 말부터, 콜롬비아가 우익성향의 민병대가 저지른 소위 ‘파라폴리틱의 스캔들’로 흔들거리고 있다. 정계인사와 경제계, 그리고 우익성향의 민병대인 콜롬비아연합자위대(AUC, 역주-2001년 콜롬비아 좌파 테러조직을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 탄생된 조직)간의 더러운 관계에 대한 폭로가 속속 이어지고 있다. 민병대 조직과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과의 연루에 대한 야당의 의문제기로 2007년 4월에 ‘파라게이트’가 시작됐다.
▲ 알레한드로 1)는 현장에서 발굴한 고무장화의 한 짝에 손을 집어넣었다.인류법의학자인 그는 장화 속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흙더미가 밴 양말을 꺼내, 매듭을 만들어서 동료에게 ‘오른쪽 중족골(中足骨)’이라 말하면서, 그것을 넘겨주었다. 두 번째 장화에선 넓적다리뼈와 비골(?骨)을 꺼낸 후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했다. 이곳은 2003년에 안드레스를 비밀리에 처형했던 장소다. 두번째 조사팀은 여전히 산길의 낮은 쪽에서 안드레스 보다 몇 분 빨리 처형된 그의 형제 베르나르도의 시체가 발견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확한 장소를 찾고 있다. 콜롬비아 검찰청 내 피스칼리아 국가인권사무소 측은 내전의 최대 피해지역의 하나이며, 세계 4위의 바나나 수출지역인 이 곳 우라바 지역의 아파르타도 평원에 우뚝 솟은 산속에서 그 장소를 찾지 못해 다섯 차례나 굴착을 해야만 했다.
사실, 사체 발굴작업은 콜롬비아뿐 아니라, 중남미에 보편화된 장기간의 내전과 그것이 필연적으로 야기한 비극적 모순과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준다.특히 이곳 지역은 아파르타도 평원에 주둔한 민병대와 제17여단이 공동으로 자행한 학살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시체로 발굴된 두 형제의 죽음은 좌파게릴라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제5, 제58 전초부대가 저지른 소행으로 드러났다. 이들 부대는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들에 특별히 주둔해 있었는데, 그 계곡은 군대이동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2003년 7월, 어느 날 저녁, 게릴라 군인들이 몇 달 전에 게릴라군에서 탈주한 베르나르도를 찾으러 왔다. 게릴라군들은 불행하게도 당시 현장에 있던 그의 동생 안드레스도 함께 끌고 갔다. 베르나르도는 아파르타도 지방의 중심부에서 직선거리로 겨우 몇 Km 거리이지만, 전기도 물도 없으며, 걷는 것보다는 노새를 타고 달리는 것이 더 나은 진흙투성이의 가파른 길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기반 시설도 없는 밀림지역의 출신이었다. 그러던 그가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에서 오래전부터 자기 환경을 짓눌러온 사회적 불의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은 20살도 안되었을 때였다. 그러나 게릴라군의 고통스러운 삶에 염증을 느낀 그는 탈주하여 아버지가 살고 있던 판잣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전장의 한가운데서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베르나르도는 정치적 견해차이가 아니라 감정적 충동으로 인해, 즉 이웃과 싸우다가 경쟁자에게 과시라도 하듯이 자신이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일원이라고 말함으로써, 탈주 게릴라의 존재를 알려준 것이다.그러나 보복은 치명적이었다. 두 형제는 몇 Km를 걸어간 후, 차례로 처형됐다.그 후, 게릴라군은 그의 아버지에게 시체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으나, 시체를 은밀히 매장할 수 있는 자유는 있었지만 정부당국에 고소하는 것은 그게 절대 금지됐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아들 죽음의 비참한 진실을 말했다. 약 4년 후, 가족들의 사체 발굴 요청(그 절차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에 따라 피스칼리아 국가인권사무소는 조사 자료를 작성했다.
최근에 충돌을 경험하고 있거나 과거에 경험했던 다른 라틴아메리카국가들과는 반대로, 실제로 콜롬비아에서는 한편에서 대립이 여전히 진행되는 가운데 사체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체가 숨겨진 무덤과 공동묘지는 전투지역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사체의 발견과 범죄행위에 대한 명확한 증거로 인해 전쟁범죄와 반인륜죄로 기소될까 하는 두려움이 증대하면서 그 무덤들이 파괴의 대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명백하게 해두어야 할 일이 있다. 2005년 7월 이른바 <정의와 평화>의 법이라고 불린 관대한 사면법에 의해 사면된 콜롬비아연합자위대(AUC)의 극우 민병대들이 특히 공동묘지의 70%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지적해야 한다.그 묘지 속의 시체들은 발굴 작업2)을 기다리는 실종자들의 것이다. 여기에 더욱 어이없는 것은 이해관계가 엇갈린 세력들 사이에 시체발굴을 빨리하기 위한 경주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피해자 가족과 그의 세력들은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면, 묘지가 훼손되고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되어 시체를 가능한 한 빨리 발굴하고자 한다. 게다가, 민병대는 가능하면 묘지를 다시 파헤쳐 뼈를 불태우거나 그것들을 가까운 강에 내던져 증거를 인멸하려 한다.
설상가상, 더욱 사악한 행동도 빚어진다. 일부 인사들은 가짜 비정부기구(NGO)를 조직하여,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인멸하기 위해 합법성을 가장하여 외국대사들을 상대로 기금 모집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시체발굴의 권한은 피스칼리아 국가인권사무소의 조사관과 예비판사들에게만 주어진다. 인권사무소의 팀원들이 총격을 당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지난해, 카를로스 카스타뇨의 명령에 따라, 1997년 7월 민병대에 의해 전기 절단기로 절단된 채 죽은 마피리판 지역의 30여 학살피해자의 시체를 발굴할 때, 한 발굴팀은 민병대와 팀의 경호를 담당한 특수조직 군인들 간의 총격전 속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그곳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즉, 일반적으로 피스칼리아의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 인권사무소의 총체적인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상도로에 의한 접근로가 부족한 것을 고려하여 정부군이 기술요원과 예비판사 팀을 단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접근하는 것을 담당한다 - 보통 헬리콥터로 접근하게 한다. 그리고, 조사팀이 힘겹게 걸어서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특수 부대가 걷는 내내 동행을 하고, 작업 내내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고 돌아오는 길의 안전도 보장해준다.
상황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조사팀원중의 한명이 강조했듯이,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사법활동의 순조로운 진행이 방해받을 수 있다. <군대나 경찰 등 공공기관의 구성원을 조사해야 할 경우, 그 효과는 아주 부정적이다. 어떤 경우, 가능하다면 조사의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한명 혹은 몇 명의 친지들을 발굴해야 하는 증언자들에게, 내전중인 상황 속에 무장군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히 위협이다.
피스칼리아 조사팀이 준비회의를 하는 동안, 두 희생자의 아버지는 발굴단의 출발 전날 아파르타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전, 노인은 게릴라군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60살이 넘은 그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작은 땅을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피스칼리아 조사팀과 함께 나타나기를 원치 않았다. 그의 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까지는 결과를 얻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지만, 아들을 발굴하는 것은 참아낼 수 없고, 견디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지막 시련이다. 그러면, 또다른 누가, 헬리콥터가 모든 조사팀원들을 숨겨진 무덤으로 접근시킬 수 있도록 조사팀이 무장군인과 함께 착륙 지점의 확인을 도와줄 것인가 ? 특히 숨겨진 무덤을 어떻게 찾을까?
그의 딸은 사실 그 장소를 모르지만, 겨우 14살짜리 소년인 그의 아들은 알고 있었다. 엄마의 법적 동의를 얻은, 조사팀의 파견은 따라서 전적으로 카를리토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가냘프지만 결연한 자세로 그는 모든 사람들의 질문에 답했다. <헬리콥터로 가능한 유일한 곳이 저기예요. 다른 지역은 나무가 무성해요.> 정말로, 이 밀림 속에서, 조사팀을 그의 사촌들이 숨겨진 무덤까지 안내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할까? <예, 문제없어요. 4달 전,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 내가 두 개의 나무십자가를 세워 놓았어요.>
참모본부지도 위에 헬리콥터의 정확한 착륙지점을 표시하고 나서, 도보로 따라갈 코스를 표시하기 위해 제17여단의 지휘부와 회의를 마친 다음, 또다시 엄마의 동의하에 카를리토는 밤새워 지적(地籍) 표시와 지역의 안전을 담당하는 특수부대 군인들을 안내하기 위해 출발했다. 방식은 매 조사팀의 출발 때마다 동일하지만 더욱 주의가 요구되었다. 왜냐하면, 전날밤 FARC 게릴라군과 정부군이 충돌했으며, 정부군은 몇 명의 사상자와 부상자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정보들은 공표되지 않았다. 몇 개의 소규모 교전만이 매주 언론에 발표되지만, 많은 전투가 실제로 알려지지 않는다. <전쟁은 전지역에서, 모든 부문에서 지금처럼 치열한 적이 결코 없었어요.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어요.>라고 참모부의 한 요원이 고백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는 군과 게릴라와 관계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협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그들을 충분히 약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향후, 더 이상 우리의 역할은 없고, 정치인들의 역할만 남았어요.> 정치인들, 정치분석가들, 지역 지식인들의 <내전-이후>에 대한 이야기들과는 아주 다른 전쟁에 관련된 수많은 예사롭지 않은 주장들이 떠돈다. 실제로, 콜롬비아 플랜(주3)과 그것의 부산물인 패트리오트 플랜의 테두리 안에서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은 무장저항운동을 거의 무력화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 작은 초지 위에 헬리콥터를 최대로 신속하게 안착시킨 후, 전원이 카를리토와 밤새 이 지역을 안전지대화한 군인과 합류하였다. 반쯤 버려진 회색빛 판자로 지어진 몇 채의 집 위에서,
짓누르는 듯한 하늘과 적도 밀림의 회색빛 햇살 속에서, 조사팀의 일부는 숨겨진 무덤을 GPS에 입력하였고, 또 다른 일부는 흙을 제거하고, 사진사들은 2단계 발굴작업을 각각 촬영하였으며, 몇몇 군인들은 눈을 부치기 위해 길게 드러누웠고, 나머지 군인들은 경계를 섰다. 돌아올 때는 다른 길을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지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쉬운>반면,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더 까다로울 것이고, 동일한 장소를 두 번 통과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다.
조금 후, 그들을 데리고 갈 군용트럭이 도착 예정지인 카라콜리 촌락에 모두들 도달했다. 강 저편과의 차이점은 블록 집들이 있고, 전기가 있고, 카페의 텔레비전이 시끄럽게 “텔레노벨라”를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군인들과 피스칼리아 조사팀원들이 <포니말타>라는 가장 인기있는 콜롬비아 탄산음료를 마시기 위해 그 카페로 달려갔다. 이곳에서는 규칙과는 달리 코카콜라를 팔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피스칼리아 인권사무소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한 인물이 손가락으로 촌락의 끝지점을 지적 했다. <2004년 3월 초, 저기에서 인권위원회에 대한 공격이 있었어요. 몇명의 예심판사와 검사들이 있었고, 그 습격사건으로 경찰 한명이 사망했어요. 그 대표단은 일주일 전, 끔찍한 상황 속에서 아파르타도 지방의 산호세 평화마을(주4) 지도자들 중의 한명과 그의 가족에 대한 민병대의 저격을 조사하기 위해 왔었죠.> 침묵이 흘렀다. <저는 땅속의 구덩이에서 시체조각을 꺼냈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쌓아올렸죠. 저는 여자의 넓적다리뼈 조각을 발견했어요. 피얼룩을 볼 때, 그 여자는 산채로 도끼질로 잘게 찢겨있었던 것 같아요.>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가장 고약한 것은 우리들 중 누구도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흥미가 없었다는 거예요. 우리들은 작업에 대하여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들은 시신 위에 발굴한 것들을 줄로 묶었죠. 작업을 진행할 수 없는 순간도 있었죠. 그러나 우리가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진실로 믿어졌기 때문이예요.>
유용된 공공기금
제17여단의 신병(新兵)들이 조사팀의 작업을 보호하고 있지만, 바로 이 제17여단이 이 살육행위 속에서 민병대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었다. 또한 지난해 3월초, 59명의 미하원 의원들은 아파르타도 지방의 산호세 평화마을에 대한 폭정, 특히 160여명 이상의 마을주민에 대한 살해행위에서 제17여단의 은밀한 역할을 특히 비난하였다.
최근 3월 8일부터 12일까지 라틴아메리카 순방중, 콜롬비아를 방문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우리베 대통령에게, <나는 자랑스럽게 당신을 친구이며 전략적 지지자라고 부르겠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이른바 <파라-폴리티크(민병대 정치)> 스캔들의 틀 속에서 계속되는 작은 사건들을 겪고 있다. 이 나라는 살인과 실종의 한복판에 있다.
<파라-폴리티크> : 정계와 경제계, 민병대 간의 전략적 유착 시스템에 의하여, 민병대와 그 협력자들은 많은 지역을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통제할 수 있으며, 권력을 공고하게 하고 보건, 교육, 기반시설 용도의 기금을 전용하기 위하여 공공행정의 모든 차원까지 침투시킬 수 있다. 극우집단의 재정확보와 관련하여, 토지와 가축 등, 재산의 힘에 의한 가로채기와 마약밀수와 같은 불법 수단들이 종종 거론된다.
한편으로, 보건, 교육, 사회기반시설 등의 부문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기 위한 지역 정부의 가용예산과, 다른 한편으로, 석유와 가스와 석탄, 금, 기타 주요 광석 등, 천연자원과 연관된 직간접의 제연금 등 법적 공공기금의 유용에 의한 재원확보 메커니즘은 지역과 지방의 차원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국가자원의 횡령 중에서, 민병대의 영향 하에 있는 시장과 시의원들은 방패막이협회나 준군사적 성격의 가짜 onG 단체들에게 수익성 계약을 부여하고, 그 대신에 이 단체들은 호의적인 선출직 인사들에게 보답을 한다. 반면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협, 강제전출, 고문, 살인, 실종 등이 뒤따른다.
일단, 권력과 부패에 의하여 지역적 차원을 이렇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 그 동력은 여타의 경제적 정치적 지평으로 퍼져나간다. 지역 차원은 민병대와 그의 방패막이조직, 협력 정치인들의 권력과 공공 행정기관의 최고위 요직을 향한 발판으로써 기본적인 것이다. 최고위 요직이란 지방장관의 소재지, 의회와 사법부, 군부, 일부 대기업의 정보부서 등의 전략적 포스트를 의미한다.
공공행정기관의 핵심적 요직에 도달하기 위해, 민병대들은 장기적인 정치적 전략(주5)을 수립해야만 했다. 경제-정치-군사 프로젝트를 정당화하는 연설이 당시 AUC의 지도자였던 카를로스 카스타노(주6)의 인터뷰와 함께 콜롬비아 언론에 의하여 호의적으로 중계된 것은 특히 1999년이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중앙정부의 공백과 비효율을 보충하기 위해 대(對)게릴라 반소요 투쟁의 상황 속에 민병대조직을 소개했다. 이 결정적인 언론 임팩트에 이어, 민병대집단은 콜롬비아의 지역과 지방의 다양한 엘리트들과 연합하였다. 당시, 그들은 지역적 성격의 다양한 정치운동을 조직하였고, 그 조직의 도움으로 그들은 직접적으로 또는 <동지들>의 중개에 의하여 시장직과 시의원직에 오를 수 있었고, 일반적으로 콜롬비아의 지역과 지방의 행정조직에 침투할 수 있었다.
<파라 폴리틱(민병대 정치)> 행위자들이 행한 공공기금에 대한 다양한 유용 사례에 대한 연구가 부재하다는 사실은 그 주제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쨌든, 하나의 접근 방법에 의해서 이러한 조직적인 횡령 중에서 두드러진 사항들, 즉 콜롬비아의 모든 직급의 다양한 인물들의 부패와 횡령 관련 소송자료들을 판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료들은 민병대들의 영향 하에 있던 지역들에서 지역적 지방적 차원에서 구체화되지 않은 수많은 부정한 계약들과 관련된다. 또 다른 경우, 콜롬비아 정계의 많은 인사들과 연루되었던 여러 시끄러운 스캔들과 관련있다.
2006년 3월에 압수된 자료들로 인해 우리베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당들과 연루된 대서양변의 알바로 가르시아, 자이로 메를란도, 에릭 모리스 등의 상하원의원들이 1차로 체포되었다. 2006년 말에는 <호르헤40>이란 민병대의 한 지도자의 컴퓨터를 압수하여 대서양지역 정치인들과의 계약 리스트와, 2002년과 2006년 우르베 대통령의 당선과 재당선을 용이하게 했던 선거조작이 폭로되었으며, 저격대상자와 수많은 학살자 리스트와 정부정보기관에 대한 <파라(민병대)>의 광범위한 침투 사실이 폭로되었다. 우르베 대통령의 측근이자 동료인 정보기관(DAS)의 전 최고책임자인 호르헤 노구에라가 2월 15일 대법원의 명령으로 체포되었다. 기술적인 이유들로 곧바로 석방되었지만, 그에 대한 압력이 무력화된 것은 아니며, 콜롬비아 사법부는 그를 재투옥할 준비가 되어있다.
모두 <우리베 대통령> 당(黨) 출신인 상하원의원들과 고급공무원들을 포함하는 <파라-폴리틱(민병대 정치)>에 대한 사법적 대량 살해가 전국의 몇개 지방으로 확대되었으며, 위원회의 여러 위원장들의 투옥으로 하원의 활동이 마비되었다. 4월 17일, 야당인 대안민주중심(PDA)의 좌파 상원의원 구스타보 페트로는 우리베 대통령이 1990년대 중반기에 주지사였을 당시 그의 지원을 받은 안티오쿠이아 지방에서의 민병대와 마약밀매조직의 확장 메카니즘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그러한 사실이 지난시대의 신(新)메델린 카르텔(역주-1980년대 국제 마약밀매로 악명을 떨친 콜롬비아 최대 마약조직)의 성립을 가져왔다.
그 와중에, 많은 민병대집단들이 활동을 개시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전에 전혀 동원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들이 활동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법률가위원회에 따르면(주7),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1차 재임기간 동안(2002-2006), 1만 천3백 명의 민간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처형되었는데, 범죄의 14%는 정부요원에 의하여 자행되었으며, 60%는 국가가 용인한 <준군사집단>에 의하여 저질러졌다.
주 1. 신변안전을 위하여 모든 이름은 변형되었다.
주 2. 알바로 우리베 정부가 민병대에 대하여 조율한 조치인 <정의와 평화>의 법에 따라, 범죄에 관계없이 유죄판결을 받은 민병대원은 5~10년의 형만을 받는다. - 그것도 반드시 감옥에서만이 아니라, <모범농장>에서 형을 치루기도 한다.
주 3. 콜롬비아 플랜은 1999년 클린턴(미국)과 안드레스 파스트라나(콜롬비아) 정부 하에서 수립되었다. 이를 재정지원하기 위해, 워싱턴은 40억 달러를 지불하였으며, 매년 7억 달러를 계속 <지원할>것이다.
주 4. 평화마을은 무장투쟁의 중립성을 주장하였다.
주 5 La Corporacion Nuevo Arco Iris de M. Léon Valencia 는 1999년부터 지역, 지방, 전국적 차원에서 민병대의 권력의 공고화 과정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www.nuevoarcoiris.org.co.
주 6. 카스타노는 2004년 4월 불가사의하게 실종되었다.
주 7. BBCMundo, 런던 2002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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