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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은 한참 뒤였고, 몇 년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빈)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카페 메뉴에 비엔나커피가 없음을 비로소 확인했다. 명동의 비엔나커피를 추억 저편으로 떠나보내면서 그 대신 비슷해 보이는 카페 멜랑주라는 놈을 골라 마시고, 돈가스와 닮은 슈니첼도 맛보고, 다뉴브 강 누드 비치도 멀리서나마 구경하고, 신년 음악회가 열리는 비엔나 황금홀의 음악회에 참석한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합친 것보다 더 ‘행복한 충격’을 안겨 준 것은 비엔나미술사박물관에서 작품을 감상한 일이다. 미술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던 내게 비엔나는 막연히 음악의 도시로만 입력되어 있었고, 별 기대 없이 시간이 남아 들러 본 자리였다. 세상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야말로 별천지가 펼쳐졌다.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과 얀 페르메이르의 ‘화가의 아틀리에’를 비롯해 책에서만 보던 대가들의 그림들이 방마다 벽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내겐 이름마저 낯설던 이 박물관의 걸작 컬렉션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죄수들이 난생 처음 들어 본 클래식 음악에 사로잡히듯, 걸작 미술품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음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잘 몰라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본 것도 그때였다.
이번에 서울 나들이를 온 ‘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 합스부르크 왕가 컬렉션’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했다. 렘브란트가 그린 아들의 초상화를, 주름살 하나하나가 생생한 데너의 ‘늙은 여인’을, 참회하는 베드로의 눈에 고인 눈물을, 신화 속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을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붓질마다 스며 있는 화가의 숨소리, 고뇌와 영혼의 흔적에서 전해 오는 감동일 것이다.
미술 작품과 마주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풍부하고 강렬하고 보람 있는 일 중 하나라고 한다. 중요한 점은 평론가처럼 조목조목 분석하고 설명할 만한 지식이 있어야만 미술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덕수궁 미술관의 최은주 관장은 “해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로 내게 용기를 주었다.
모든 뛰어난 예술작품은 마음을 열고 대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감동’이라는 선물을 안겨 주기 때문이란다. 그 어렵지 않은 공감이야말로 좋은 작품들이 내뿜는 특이한 에너지의 자장이 아닐까.
여름방학을 맞아 대형 전시들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멀리 여행을 떠나야만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좋은 전시를 찾아 각자 좋아하는 그림을 ‘발견’하는 일, ‘나만의 명작’을 놓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평생 남는 추억이 될 것이다.
동아일보, 고미석 문화부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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