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7일, 알제리행 에어프랑스를 탔다.
1986년 1월에는 세네갈 행 비행기를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한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알래스카를 거쳐 파리에 새벽에 내려 드골공항에서 4시간인가를 기다리다 세네갈 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 당시 세네갈 공항에 내린 것은 어둠컴컴한 새벽이었던 거으로 기어한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새벽인데도 후끈한 공기가 얼굴을 확 덥치는 듯한 느낌이었따. 공항청사로 들어서 입국심사를 위해 줄을 서있는데 전기가 나가면서 캄캄해졌다. 옆에 있던 프랑스인이 <이것이 아프리카야 c'est l'Afrique:>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후큰한 공기와 캄캄함으로 아프리카는 내게 다가왔었다. 20여년전의 기억이다. 다시 아프리카이다. 지난 7년전엔가 알제리에는 한번 온 적이 있어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그 땐 잠시 일정으로 시장조사차 왔던 것이지만 지금은 적어도 1년은 이곳에 머무르며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나와 아프리카와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한 친구의 소개로 아프리카 전문무역회사인 아주상사에 입사하여 6개월 동안 한국에서 무역업무를 익히고 86년 1월에 세네갈, 카메룬을 거쳐 가봉에 도착하였다. 사실 가봉하면 그때는 가봉이 나라이름인지 봉고가 나라이름인지도 구별이 안될 때였다. 얼마전 서거한 봉고 대통령의 이름 나라 이름이 비슷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헷갈려하는 것 같다. 봉고 대통령도 북한 김일성 처럼 왯동안 장기집권한 대통령으로 세계역사에 기록될 만한 인물이다. 내가 가봉에 있을 때 가봉의 수도인 리브르빌(Libreville)에서는 일년에 몇번 후와르(Foire)란 이름으로 상품전시회가 있었는데 무역회사인 우리로써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직원 중의 한명은 전시회를 방문한 봉고 대통령과 악수한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곤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내가 아프리카로 일을 하러 간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무척 걱정어린 반응을 보였었다. 그 당시와 비교하여 지금도 보통의 우리나라 사람들엔 아프리카가 정말로 미지의 땅이다. 지금은 식인종의 아프리카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을 없으리라고 희망은 해보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아라의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수준이다. 당시 내가 가봉에 도착했을 때 거리의 시내공중전화 박스에서유럽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도 직접 전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기반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의 공중전화에서는 국제전화를 할 수 없는 상태이였기에 나는 놀라워했었다.
그 당시에 내가 갔던 나라들은 전문 용어로 표현하면 검은 아프리카(Afrique noire, Black Africa)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도착한 아프리카는 같은 대륙이기는 하지만 검은 아프리카가 아니다. 종족도 다르다. 알제리를 포함한 모로코, 튀니지, 리비아 등을 마그레브(Magreb)라고 별칭한다. 회교국이지만 중동의 회교국가들과도 다르다. 소위 오랜 인류문명권인 지중해문화권이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루투갈 등 한 때 세계최강의 국가들과 이웃하여 문명을 교류했던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불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아랍어가 공용어이고, 자기 고유의 언어도 갖고있고 있으며 석유매장량도 많고, 천연가스 매장량도 많은 자원부국이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로마, 오스만터키 등도 완전히 지배해본 적이 없으며, 프랑스도 약 150년 정도 이곳을 지배한 역사가 있지만 독립운동으로 프랑스도 축출한 자존심이 강한 나라가 바로 알제리라고 전한다.
앞으로 조금씩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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