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식민 상처 한국역사와 닮은꼴”
- 경향신문 2009-01-07 15:14:53ㅣ수정 : 2009-01-07 15 설원태 선임기자 solwt@kyunghyang.com
ㆍ알제리·터키 언론인과의 대화
ㆍ“터키 EU 가입 지연…우린 아쉬움 없어”
필자는 체코 정부의 초청으로 2008년 12월 첫 주 체코를 취재방문하던 중 소수의 외국 언론인들과 대화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체코공화국이 초청한 언론인이었다. 필자가 알제리와 터키 언론인과 나눈 대화는 이들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돼 여기에 소개한다. 이번 기사는 필자의 체코 방문과 관련된 3번째이자 마지막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기사는 지난달 18일, 25일에 게재됐다.

엘 와탄 신문의 아멜 블리디 기자(왼쪽), 투데이즈 자만 신문의 압둘라 보즈쿠르트 편집국장
아멜 블리디 - 알제리 ‘엘 와탄’신문 기자
알제리의 프랑스어 신문 ‘엘 와탄(El Watan. 와탄은 아랍어. 영어로는 The Nation이라는 의미)’의 아멜 블리디(Amel Blidi·여) 기자와의 대화는 12월4일 수도 프라하에서 올로묵 시티(Olomouc City)를 향해 동쪽으로 이동하는 고속열차에서 이뤄졌다. 별로 흔들리지 않는 기차 안에서 필자는 블리디와 마주 앉아 2시간 이상 얘기했다.
필자는 블리디 기자와 대화하면서 알제리는 피식민 경험이나 독립 후 국내 정치의 비민주적인 모습이 한국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민 모국에 대한 태도는 알제리인과 한국인이 매우 달랐다. 알제리인들은 식민 모국의 문화에 대해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2중적 태도”를 갖고 있으나,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주로) 증오하는 감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블리디는 알제리의 저명 소설가 카테브 야신(Kateb Yacine)의 말을 인용하면서 프랑스에 대한 알제리인의 복합적인 감정을 설명했다. 야신은 프랑스에 대해 “나는 너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너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다(Je t’aime, moi non plus)”고 말했다고 한다. 블리디에 의하면, 알제리인들은 프랑스의 식민통치(1830~1962년) 동안 프랑스인에게 고문을 당하거나 착취를 당했기 때문에 프랑스에 대해 상당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알제리인들은 동시에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프랑스의 고급 문화를 지칭하는 듯)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알제리인들이 프랑스 문화를 습득한 것에 대해 작가 야신은 “전쟁의 노획물(butin de guerre)”이라고 표현했다. 알제리인들이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투쟁을 하면서 동시에 프랑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웠다는 얘기인 듯하다. 블리디는 “알제리인들은 야신의 이런 생각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설명했다.
블리디는 “알제리인들은 요즘 프랑스 방송(주로 프랑스 드라마)을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랍어를 모국어로 하는 알제리인들은 아랍권을 상대로 하는 ‘알 자지라’ TV도 보지만 프랑스 TV 시청을 매우 즐긴다는 것이다. 블리디는 “알제리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프랑스어를 배운다”면서 “알제리에는 아랍의 문화와 프랑스의 문화가 병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독립했지만, 옛 식민 모국 프랑스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프랑스인들은 식민통치 기간 중 알제리를 “알제리-프랑세즈(Algerie-Francaise)”로 불렀다. 알제리와 프랑스가 한 몸이 됐다는 얘기다. 그의 말은 일본인들이 조선 식민통치 동안 “한국과 일본이 하나가 됐다(내선일체·內鮮一體)”고 말하면서도 조선 사람들을 2등 국민으로 멸시하고 수탈했던 역사를 연상시켰다. 프랑스는 1, 2차 세계대전 동안 알제리 젊은이들을 동원해 전투에 투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알제리 여성들은 프랑스인들에 의해 성폭행당했다고 한다. 그는 “역대 어느 프랑스 대통령도 알제리인에게 행한 과거의 비행에 대해 사죄한 적이 없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알제리인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필자에게 일본의 조선 식민통치를 필연적으로 연상시켰다.
알제리인들은 독립을 위한 알제리 전쟁(1954년 11월1일~1962년 7월5일)을 치르면서 국민 100만명 이상이 죽음을 당했다. 그럼에도 요즘 젊은 알제리인들은 공부를 하거나 일자리를 구하려고 프랑스로 몰려간다고 한다. 현재 100만명 이상의 알제리인들이 프랑스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알제리인들이 프랑스 시민권을 얻기는 어렵다고 한다. 블리디는 “알제리는 새로운 형태로 프랑스에 의해 식민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블리디의 말은 강국에 의한 130여년간의 식민통치가 식민지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잘 보여주는 듯했다.
블리디는 요즘 본국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깊은 걱정을 털어놓았다. 불과 몇주 전인 2008년 11월11일 알제리의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Abdelaziz Bouteflika) 대통령(두 번째 임기 재임 중)은 헌법을 고쳐 3연임 이상도 가능하도록 했다. 야당 정치인들은 이것을 막을 힘이 없었다고 한다. 블리디는 “군부는 91년 선거에서 이슬람당이 우세를 보이자 불만을 품고 개표에 노골적으로 개입해 모든 정치과정을 중단시켰다. 현재 군부는 모든 실권을 쥐고 있으며, 관리들의 부정부패, 악화된 경제상황(실업률 15%, 경제성장률 4%)등을 보면 조국의 앞날이 몹시 걱정된다”고 말했다.
알제리 헌법은 다당제를 보장하고 있어 60여개 정당이 난립해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정당은 없다고 한다. 알제리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한 채 독재정치로 흘러가고 있다. 알제리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단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국으로 로마, 오스만 튀르크, 프랑스 등에 의해 수백년에 걸쳐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2년 5월 독립했다. 알제리 국민은 카빌족, 차위족, 타르구이족, 모자빅족, 베르베르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알제리인들은 ‘변형된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블리디는 국립 알제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뒤 기자가 됐다. 그는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수시로 프랑스어로 표현했다. 필자는 블리디에게 “수첩에 써 달라”면서 대화를 진행했다. ‘엘 와탄(www.elwatan.com)’은 수도 알제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다.
압둘라 보즈쿠르트 - 터키의 유력 영어 신문 ‘투데이즈 자만’의 편집국장
“경제 기사와 광고 사이에는 엄격한 구분이 있어야 하지만 요즘 들어 수시로 그 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은 정치인, 관리, 기업인 등을 주로 비판하고 있지만 기자는 자신은 물론 다른 기자들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터키의 유력 영어 신문인 ‘투데이즈 자만(Today’s Zaman. 자만은 터키어로 Times라는 뜻)’의 편집국장인 압둘라 보즈쿠르트(Abdullah Bozkurt)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인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얘기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고위 경영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체험과 지혜를 집약해 얘기해 주기 때문이죠.”
압둘라는 터키어와 영어로 동시에 발간되는 투데이즈 자만(WWW.TODAYSZAMAN.COM)에서 영어판의 제작을 맡고 있다. 그는 “인터넷판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판은 아직 이익을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신문의 인터넷판이 이익을 낼 수 없는 현실은 한국이나 터키가 비슷한 것 같았다.
터키가 여러 해 동안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압둘라는 “터키가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면 힘을 발휘할 것을 우려해 프랑스의 사르코지가 이에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여론도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EU 가입에 반대하는 분위기임을 알고 있다”면서 “터키는 EU 가입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가입이 안 돼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EU 가입 교섭이 장기화될수록 터키인들은 이 문제에 흥미를 잃을 것”이라고도 했다.
압둘라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전공(석사학위 취득)한 뒤 미국에서 17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08년에 귀국해 신문 영문판의 편집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터키 귀국 직후 아들이 한동안 터키어를 읽을 줄 몰라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으나 반년이 지난 요즘에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가 체코를 방문할 때인 2008년 12월 첫주에 한승수 국무총리가 터키를 방문했다. 압둘라는 호텔 ‘프라하의 성’ 카운터에 설치된 컴퓨터 화면을 통해 투데이즈 자만에 접속한 뒤 한 총리의 터키 방문 기사(투데이즈 자만 인터넷판 12월3일자)를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압둘라는 귀국 후 필자에게 e메일로 “터키 장병들이 한국전 당시 수원에 ‘앙카라 학교와 고아원’을 세워 전쟁고아들을 보살피고 가르쳤다”는 내용의 투데이즈 자만 기사(http://www.sundayszaman.com/sunday/detaylar.do?load=detay&link=161851)를 보내 왔다. 이 특집기사의 제목은 ‘(터키 장병의) 일기는 터키 군인들이 한국전 동안 한국의 고아들을 돌보았음을 보여준다(Diary reveals Turkish soldiers cared for Korean orphans in war)’로 돼 있다. 이 기사는 또한 올해가 한국·터키 수교 60주년이 된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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