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포트/책

전기문학과 프루스트 전시회(2000년 봄)

빠리 정병주 2007. 5. 21. 07:21
 

 전기문학과 프루스트 전시회

                -문학의 폭과 독자 넓히기-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곳 프랑스에서도 연예인, 가수, 배우의 사생활에 관련된 책과 사진, 잡지들이 선정적인 광고와 더불어 많이 팔린다. 또 한편에서는 그만한 크기와 중요성을 갖고 과거나 현재의 작가 예술가 정치가 등 큰 인물에 관한 전기(傳記)-평전(評傳)류의 책들이 출간되고, 그들의 편지와 일기가 보통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단행본으로 발간되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 속의 인물은 그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만 주목의 대상이 되지만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 박정희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글들이 발표될 때마다 그 내용이 사실이든 허구이든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현상을 생각해보면 프랑스의 경우도 쉽게 짐작될 것이다. 글 속의 어떤 요소가 실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력은 한층 역동성을 갖게 될 것이다. 현실과 허구적 작품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전문 지식을 갖추지 않은 보통 사람도 상식을 갖고 판단하고 따라갈 수 있는 실존 인물에 관한 전기, 평전 또는 소설은 광범위하게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유신시대를 종식시킨 김재규에 대한 글을 연재했던 99년도 『라쁠륨』의 기획은 사실의 규명은 차치하더라도 많은 독자들이 주목했으리라 본다.

  지난 한 해 동안 다른 나라 출신의 인물에 관한 전기는 제외하고 프랑스 출신 인물만 하더라도 발자크(로제 피에로), 상드( 피에르 브뤼넬), 졸라(앙리 미테랑), 랭보(클로드 쟝콜라), 프루스트(쟝 이브 타디에), 콜레트(델 카스티요, 클로드 피쉬와), 브르통(폴리조티) 등의 전기나 평전이 별개의 단행본으로 또는 그들의 작품과 더불어 출간되었으며, 크리스테바의 남편이며 60년대 문학잡지 『텔켈(Tel Quel)』의 창간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솔레르스의 일기와, 진보적 좌파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Nouvel Observateur)의 창간인 쟝 다니엘의 일기 등이 출간되어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전기문학의 활성화를 반영하여 프랑스에서는 작가를 지칭할 때 시인, 소설가, 극작가, 영화시나리오작가와 더불어 전기작가를 분명하게 표시한다. 잘 알려진 앙드레 모로아(André Maurois)는 위고, 프루스트, 발자크의 전기 전문작가이며, 몇 년전 졸라의 전기를 썼던 앙리 트로아(Henri Troyat)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고골리의 전기작가로 정평이 나있다. 문인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철학 분야의 인물에 대한 단행본들이 전기작가와 전문학자들에 의해, 그리고 저널리스트에 의해 매년 수없이 출간되고, 출간될 때마다 독자들이 관심을 기울인다. 역사가 막스 갈로의 『드골 전기』가 최근 몇년간 인기리에 읽히고 있으며 『나폴레옹 전기』는 한국에서까지 번역되었다.

  문학교수들은 자신들의 작품연구가 절정에 이른 시점에 작가의 평전이나 전기에 의해 자신의 연구를 대중화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졸라 연구의 권위자 앙리 미테랑 교수, 이 글의 후반부에서 거론할 프루스트 전시회를 지휘한 프루스트 타디에 교수, 상드와 쇼팽 사이의 관계에 관한 피에르 브뤼넬 교수, 콜레트 전기의 끌로드 삐쉬와 교수 등이 1999년 작가전기를 출간하였다.


  이와 같은 전기-평전류의 인기속에 현역 정치인들까지 문학가에 대한 전기는 아니지만 전기류의 책을 내어 자신의 박식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과 교양을 자랑하면서 유권자의 인기를 끌려고 한다. 미테랑 대통령 집권시 문화부와 문교부 장관을 겸임하며 앙드레 말로(인간조건의 작가로 드골 대통령 집권시 세계 최초로 문화부를 창설, 초대 장관을 역임하며 프랑스의 정치에 문화정책의 중요성을 정착시킴) 이후 프랑스 정치인의 문화의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자크 랑(Lang)은 이탈리아 원정 후 프랑스에 르네상스의 기초를 마련한 왕 『프랑스와 1세』에 관한 책을 출간하였으며, 현 시락 대통령의 집권초 문교부장관을 역임한 베루(Bayrou)도 장관직을 물러나자 랑 장관에 뒤질세라 『앙리 4세』에 관한 책을 썼으며, 전수상 쥐페(Juppé)도 『몽테스키외』를 다투어 출간하였다.

  전기문학의 중요성을 반영하여 공쿠르 상 등 권위있는 문학상들은 전기부문을 마련하고 있으며, 출판사마다 전기 시리즈를 갖고 있는데 특히 플라마리옹 출판사의 전기 시리즈가 귄위를 자랑하고 있다.


  누구나 청소년 시절 밤을 새우며 위인전을 읽으며 감동하고 꿈을 키웠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우리에게는 성인을 위한 전기류의 책이 드문 것 같다. 인기 연예인에 대한 신변 잡기나 얄팍한 호기심에서 독자를 해방시키고, 여러 부문의 큰 인물에 대한 인문적(人文的) 관심으로 독자의 수준을 한 단계 높히는 역할을 작가나 학자가 떠맡아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남의 나라 얘기를 해본다. 작가에 의한 지적(知的) 공급이 독자의 지적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을 터이다.


  새로운 독자층의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이색 전시회 하나를 소개한다. 프루스트에 관한 전시회가 《프루스트, 글쓰기와 예술들》이라는 제목으로, 전 대통령 미테랑의 야심적인 계획아래 퇴임 전에 서둘러 준공하여 화제가 되었던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해 11월초부터 시작되어 2월초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20세기 세계문학사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프랑스 작가 중에 프루스트 만한 작가도 드물 것인데, 그의 작품을 끝까지 읽었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그리고 작품을 잘 이해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웬만큼 소설을 읽었다고 자처하는 프랑스인조차도 프루스트를 읽었느냐 물을라치면 손을 내젖으며 혀를 내두르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인까지 그에게 매달리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의 작품을 이해한다면 20세기 전반의 프랑스 문학,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하면 지나친 주장일까? 어쨌든 프루스트는 19세기 문학과 구별되어 20세기의 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가로 자주 거론되는데,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면서 국립도서관은 흥미있는 방식으로 프루스트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프루스트 전시회라니 그가 그림도 그렸었나? 물론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인물 성당 의상을 스케치했지만(단행본『프루스트의 눈, 마르셀 프루스트의 뎃상』으로 출간) 이 전시회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프루스트가 소년 시절에 그의 엄마와 함께 읽었던 문학 작품들(상드, 세비녜 부인, 라신느, 로티, 뮈쎄, 스티븐슨)과, 그의 미학을 형성시켜준 회화 작품들과 조각 작품들(모네의 루앙 성당 등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박물관 및 다른 박물관의 소장품)을 전시하였고,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에 보았던 회화 작품들, 그의 자필 원고 그리고 끝임없이 반복하여 수정한 흔적이 보이는 원고, 독서노트 등 그의 삶과 글쓰기에 관계된 것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자주 듣던 음악의 악보를 전시하고 음악을 들려주였다.

  프루스트의 작품을 읽은 사람에게는 전시물 하나 하나가 작품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감동을 되살려줄 게 당연하지만, 그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도 전시장을 둘러보는 것이 결코 따분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시회는 푸르스트의 글쓰기가 화두(話頭)이기는 했지만 그의 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문학, 회화, 조각, 건축, 의상, 음악, 사진에서부터 프루스트를 열광시켰던 20세기 초반의 자동차, 비행기에 관련된 자료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내눈에는 프루스트는 핑계꺼리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전시회를 둘러보며 프루스트와 관련된 것을 이처럼 다양하게 연구하고 수집해 보여준 기획에, 단순한 작가 전시회를 짐작했던 나는 허(虛)를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끝없이 문화, 역사에까지 확대하는 나라, 그런 풍토를 다시 한번 이 전시회에서 확인하였다.

  이 전시회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블러일으킬지 그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할 듯하다. 프루스트가 어떤 작가인지, 그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도대체 어떤 소설인가 라는 의문으로 한번쯤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길만도 하다. 우수 추천도서를 선정하고, 책읽기의 필요성을 소리 높여 외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참신한 전시회를 기획하여(이 풍성한 전시회가 가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프루스트연구가들의 꼼꼼한 연구가 뒷받침되었을까?) 자연스럽게 책읽기의 욕망을 유발하는 세련된 전략을 우리라고  개발할 수 없겠는가 생각된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문학적인 관점에서 19세기의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문학개념을 훌쩍 뛰어 넘었다고 평가되는 프루스트에 관한 이런 방식의 전시회를 기획한 직접적인 의도는 무엇일까?. 라틴 아메리카 문학과 앵글로 색슨계 작품들 앞에서 프랑스 독자들에게마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는 프랑스 문학의 위기감과, 사회 속에서 점점 비중이 약해지는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독자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작가를 기대하는 열망을 어렴풋이 헤아려 본다. (2000년 봄, 라쁠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