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포트/책

여성작가 에르노의 경험의 글쓰기-경험, 증언 그리고 역사(2001년 여름)

빠리 정병주 2007. 5. 21. 07:31
 

      

                   여성작가 에르노의 경험의 글쓰기

                                 -경험, 증언 그리고 역사 -


  1871년 파리코뮌 이후, 그러니까 130년만에 다시 좌파 출신의 들라노에 씨가 파리의 시장에 당선되었다고 세계가 놀라고 있다. 그 당선자는 몇 년 전 TV에 나와 자신이 동성연애자임을 솔직히 밝혀 프랑스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프랑스 하원은 작년에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하는 법을 제정하여 보수적인 사고에 젖어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었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오늘의 프랑스의 개혁적인 성에 대한 인식과 결혼, 남녀 관계도 50년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의 우리에게까지도, 한없이 보수적으로만 보인다. 60년대 초와 90년대 프랑스의 성과 결혼, 그리고 여성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작품화한 작가가 문제작을 발표하여 주목받고 있다. 그녀는 일상적 경험을 글로 옮겨 쓰며, 증언과 글쓰기의 관계를 반성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올해 61살인 여성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는 작년에, 낙태가 법으로 금지된 1963년에 문학석사과정의 여학생이 겪은 낙태 이야기를 『사건(L'Evénement)』이란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16살의 어린 여주인공이 겪어야 했던 임신 중절의 경험이 그녀의 삶에 <사건>으로 각인되는 이야기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낙태를 조장, 유발하거나 시술하는 사람은 투옥되고 벌금이 부과되는 시절이었다. 여주인공(작가 자신)은 임신을 하나 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결정하고, 금지된 낙태를 결심한다. 가족, 친구 그리고 주위 사람으로부터 겪는 참기 어려운 온갖 시선과 말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당시엔 자신도 정확히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이 사건을, 60대의 나이가 되어 당시의 정신 상태와 고통, 스트레스를 재구성하면서 가능한 한 냉정하게 이야기한다.

  세상으로부터 축출된 듯한 상황속에서 엄마마저 속여야 하는 상황. 모두들 그녀의 진짜 걱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의사, 인턴, 심지어 가족계획 상담원까지 ... 모두들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한다. 가족계획 상담원은 그녀의 몸을 요구하고, 낙태전문의사는 돈에 집착하면서도 고소를 피하기 위한 핑계만을 찾고... 그녀는 주위의 시선을, 시간과 의식 모든 것을 <몸으로> 겪는다. 그러나 그녀는 낙태를 한 후 죄의식을 몸으로 느끼지만, 새로 태어난 듯함을 <몸으로> 느끼고, 엄마가 되는 것과는 다른 느낌도 경험한다.

  『사건』은 비밀 낙태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작가에게는 집요한 문학적 경험의 이야기이다.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간, 도덕과 금기, 법에 대한 완전한 인간적 경험, 즉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겪은 경험처럼 보이는 것을 글로 옮겼다>

  작가는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겪어야 했던 낙태라는 인생의 사건을 글쓰기에 의해 다시 기억해내고 살려내고 이해하고 탐구하려 애쓴다. 작가는 자랑스러운 것도 아닌, 지나간 이야기 처럼보이는 자신의 낙태 이야기가 쓰여질 권리와 쓰여질 가치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에로틱한 여성성(feminin érotique), 성적인 여성성(le feminin sexuel)에만 관심을 갖고 있던 한 시대에, 생산자로서의 여자의 성(le sexe)의 한 모습인 낙태한 여성의 존재를 증언한다. 수세기 동안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에 의해 낙태가 행해져 왔던 사실이 언급되지도, 글로 씌여지지도, 그림으로 그려지지도 않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박물관에는 전쟁, 고문, 사형의 장면은 있어도 낙태 장면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사건』은 <기억>에 의하여 증명이 가능한 모든 세부를 통하여 부조리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도덕 법칙과 생물학적 법칙의 부조리함을. 애를 반드시 나아야 한다는 여자의 숙명과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여자의 숙명을.... 작가는 당대 사회가 여자로 하여금 생각하기를 금지했으며, 여자는 사회의 시선, 즉 허가와 금지의 시선을 통해서만  생각할 것을 강요하였음을 보여준다.

  에르노는『사건』과 더불어,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수퍼, 전철 등 실생활에서 작가가 만난 이웃들에 대한 관찰과, 시사문제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증오와 감동을 섞어가며 묘사한『외면적 삶(La vie extérieure)』을 발표하였다. 『외면적 삶』은 시간을 고정시키려는 시도라고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밝힌다. 지금은 중요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10년-20년 후에는 현재의 흔적을 보여주리라는 생각에서 작가가 일상에서 만나는 광고, 몸짓, 말 등의 어떤 형태를 기록하였단다. 특히 작가는 일상의 모습들이 사회계급에 따라 다른(불평등한) 모습을 띄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고 한다. 의상은 사회계급을 보여주는 중요한 코드라고 주장한다. 작가가 『사건』과 『외면적 삶』을 동시에 출간한 것은 내면과 외면은 서로 끊임없이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내면이 없는 외면적 삶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고장난 것.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이미지(像, image)와 가상(假象, cyber)이라는 의미에서 내면과 외면의 관계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늘을 위하여『사건』에서는 과거를 복원하고, 그리고 미래를 위하여 『외면적 삶』에서는 현재를 고정하려는 작가의 시도는 마치 역사가의 임무를 대행하려 하는 듯하다. 

  작가는 상상에 근거한 소설(roman)을 거부하고, 기억의 글쓰기에 의해 증명이 가능한 이야기(récit)를 쓴다. 오직 경험과 삶을 손으로 만져질 듯 확실하게 글로 옮기는 것이 그녀의 글쓰기의 목적이란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계급차별이라는 사회적 불평등(부당함, injustice)과 남녀 사이의 불평등에 의하여 글로 옮긴다. 그녀는 이미 18-19살 때 남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여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지 않는 불평등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문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세상을 밝히고 폭로하고, 세상을 향해 행동하는 데 복무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에르노는 스스로를 보봐르의 후계자라 생각한다고 밝힌다.

  2001년을 맞아 에르노는 일기『혼돈(Se perdre)』을 발표하여 또 주목을 받는다. 이 작품은 작가가 16살 때부터 써오던 일기 중에서, 10년 전인 1991년에 발표한 소설 『순수한 사랑(Pssion simple)』의 기간에 해당하는 1년간의 일기이다.『순수한 사랑』이 워낙 충격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의 작가의 실제의 일기는 충분한 호기심의 대상이 되리라. 소설은, 프랑스 여성작가와 10살 연하의 잠시 프랑스에 체재하는 유부남인 소련의 외교관과의 뜨겁고 순수한 1년 동안의 사랑 이야기인데, 짧은 분량에 포르노를 방불하는 직접적인 묘사로, 발표 당시 용기있고 강렬하고 아름답고 충격적인 작품이란 평을 받았다. 소설은 70페이지 정도의 짧은 길이였지만 일기는 294페이지라는 점도 흥미를 끈다.

  소설과 일기의 차이점은 무얼까? 작가는 충격적인 소설에 왜 더 충격적이고 위험한 일기를 더한 것일까? 소설은, <지난 해 9월부터 나는 내게 전화를 걸고 우리 집에 찾아오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고 담담하게 시작된다. 작가는 일기 속에는 소설에 담긴 진실과는 다른 또 하나의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소설문학은 사적인 일기보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다룬다는 정설에 작가는 문제를 제기한다.

  소설은 개인이 몸을 내던져 얻을 수 있는 짧지만 집약적인 '진실'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화자는 <나는 시간을 다르게, 즉 내 온몸으로 측정했다>고 말한다. 진실은 작가만의 것일 수 있다. 일기에서 작가는 소설에서와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소설 『순수한 사랑』과 일기 『혼돈』을 대립시킴으로써 작가는 진실과 현실 사이의 토론을 보여준다. 소설은 모든 독자가 수긍할 수 있을 듯한 문학적인 <진실>을 보여주지만,  일기는 아주 개인적인 <사실>의 단편으로, 독자가 수긍할 수 없는 <정열과 고통의 외침>일 뿐이라고 일기의 작가는 주장하는 것인가? 일기에서 <내가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에 다르게 사는 것일까? 그래, 아주 난 가장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해>, 라고 말한다.

  일기 작가의 말은 정확하고 단호하다. <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게 뭐지? 아무튼 사랑을 하고 꿈을 꾸고, 그가 다시 오고, 그는 사랑을 한다>. 혹은 <나의 유일한 현실은 내게 꿈과 환상, 욕망과 부드러움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가져다주지 않는 일시적인 남자이다>. 그러나 또한 일기의 작가는 <내게서 오직 히프와 유명한 작가만을 발견하는 한 남자를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에 후회하고, <나도 조금 지배해야 한다> 고 고백한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 대답은 자명하지 않다. 독자는 이상한 정신분석으로 빨려들어간다. <나는 또한, 진실로 나를 지배하지 못하는 이 남자에게, 멀리 있으면서 동시에 가깝게 느껴지는, 아버지이면서 멋진 이 금발의 왕자에게 내가 왜 흠뻑 빠져있는지 안다.> 일기는 소설속의 사랑을 정신분석한다.

  에르노는 전통적인 소설을 거부한다. 『순수한 사랑』의 사랑은 개인의 사랑이면서 집단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혼돈』은 사랑을 정신분석한다. 에르노의 개인의 이야기는 한 순간의 집단의 역사와 만난다. 각 작품이 포함하고 있는, 그녀의 과거의 경험인 각각의 에피소드는 증언의 힘을 획득하고 있다. 이 증언을 위해 그녀는 벌거벋기로, 타협하지 않고, 에둘러 가지 않고 자기 고백이란 고행을, 예술의 고행을 택한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것을 자신만이 겪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보편적인 것으로 말하고 싶어한다.

  오늘의 프랑스 소설에 관한 작가의 중요한 지적을 하나만 들어 보자. 많은 프랑스의 작가들이 전통적 의미의 소설을 포기하고 내면일기나 실화(récit)의 글쓰기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나는 오래 전에 소설(roman)을 포기했어요. 하나의 경향이 확실한 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어요. 아마도 허구(fiction)는 영화와 TV 속에서 더  큰 자리를 차지할 거여요. 사람들은 여전히 허구를 필요로 하겠지요. 글쓰기는 다른 형식을 찾고 있어요. 일기가 그 중의 하나이죠.> 라고 말한다.

  에르노는 1940년 생으로, 1974년에 누구나 겪는 사회적 고립의 이야기인 소설『빈 가구들(Les armoires vides)』로 등단하여, 1984년에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자리(La place)』로 프랑스의 4대 문학상의 하나인 르노도 상을 수상하여 주목받는 여성작가로 자리잡고, 그 이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거의 모든 작품이 영어로 번역될 정도로 영어권에서 인기가 높다. 97년,『수치(L'Honte)』에서는 노동자와 소상인 출신의 작가의 중학생 시절 이야기로, 서민 출신 소녀와 부유한 지방 도시 소녀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항상 자신과 부모 친구 애인 등, 자전적 요소를 글의 소재로 삼고 그것을 탐구하면서  연대기처럼 기록하고, 감정적으로는 세밀화를 그리듯이 글을 쓰며 증언을 하고 싶어한다.

 

  시사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문학담당기자 미쉘 크레퓌(Michel Crepu)는 21세기 프랑스 소설의 한 흐름을 이데올로기 붕괴 후의 <새로운 나의 탄생>이라고 이름 붙이며, 그 예로 에르노와 앙고(Ango)를 든다. 그의 분류가 복잡한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무모함이 느껴지지만, 프랑스 문학에 흥미있는 한국의 문학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앙고의 『근친상간(L'Inceste)』에서, <나>는 딸과 아버지의 사랑을 묘사한다. 이 작품속에서 <근친상간>은 금기사항이 아니라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짓말하지 않는 '상처'로 묘사되고 소설화된다. 에르노의 『사건』, 『순수한 사랑』 은 낙태, 뜨거운 사랑에 대한 <나>의 고백이다.  80년대의 거대담론이 사라진 후, 감수성에 탐닉하는 한국의 90년대 이후 소설에서도 <새로운 나의 탄생>을 보아야 할까?

(2001년 여름, 라쁠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