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를 바라보는 두개의 눈길, 그 저주와 찬양은 화해할 수 없나
“그는 재산이 가져다주는 덧없는 허영들을 경멸했다. 낡아 해진 옷을 입은 그는 걸인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는 거장을 보기 위해 앞다투어 밀려드는 추종자들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는 그들을 두고 ‘개구리들이 득실거리는 내 연못’이라 불렀다.”
마리나 피카소가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를 두고 써내려가는 이런 묘사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에우헤니오 아리아스의 기억과 똑같이 겹치는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하니까. 마리나는 피카소의 첫 번째 아내 올가 코흘로바쪽의 손녀고, 아리아스는 피카소의 머리를 26년간 깎은 이발사이자 공산당 동지다. 정작 ‘피카소 제국’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쪽은 피를 나눈 마리나고, 단 한마디의 비판도 없이 일관되게 그를 찬양하는 이는 아리아스다. 마리나(와 그의 가족 모두)는 피카소가 경멸해 마지않는 ‘개구리들’의 하나로 취급당했으나, 아리아스는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아”라는 허락을 받을 만큼 신뢰받는 아들뻘 친구였다.
<나의 할아버지 피카소>와 <피카소의 이발사>는 지난해 각각 프랑스와 독일에서 출간된 책이다. 70살이 넘은 피카소가 어딘가 불안한 빛을 보이는 눈을 똑같이 표지로 내놓은 절묘함을 보이지만 내용은 정반대에 가깝다. <나의 할아버지…>는 마리나가 14년간의 정신상담 끝에 삶의 균형추를 찾아내고서야 기술할 수 있었던 ‘분노어린 고발’이고, <피카소의 이발사>는 독일의 두 저널리스트가 아리아스를 1년간 설득한 끝에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평전’이다.
‘피카소 제국’에 들어가지 못한 가족들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절망에 빠뜨릴 권리가 위대한 예술가들에게는 있는가 절대를 추구하는 그들의 행보에는 무자비한 권력 의지가 불가피한 것일까 그들의 작품이 제아무리 찬란할지언정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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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의 절규는 아주 ‘단순한’ 것에서 연유한다. 애정 결핍, 그리고 모욕감! 6살의 마리나와 그보다 두살 많은 오빠 파블리토는 한동안 정기적으로 아버지 파울로의 손을 잡고 칸의 커다란 저택을 찾아간다. 하지만 냉담한 소리만 듣고 돌아서기 일쑤다. “오늘은 주인님을 만나실 수 없습니다. 주인님께서 작업 중이시라고 자클린 부인(피카소의 두 번째 부인)께서 전하라 하십니다.” 어쩌다 대문이 열리는 날이어도 할아버지의 염소인 에스메랄다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돈을 얻어볼 요량인 아버지는 어린 딸이 보기에도 비굴하고, 웃음을 건네는 할아버지의 손길은 냉랭하다. “피카소의 며느리가 된 것을 신과 같은 권리를 얻은 것처럼” 여기는 어머니는 속물인데다 방탕해서 마리나와 파블리토를 제대로 돌볼 줄 모른다. 집 밖에서는 ‘피카소의 손자, 손녀’라는 눈길을 받지만, 실은 굶주리고 헐벗은 채로 간신히 학교를 다닐 뿐이었다. 지우개·연필·공책 하나를 더 사려고 해도 할아버지의 재산관리 변호사의 허락을 일일이 받아야 했다. 분노는 피카소가 숨진 직후에 더 커진다. 오빠 파블리토는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으나 장례식에 참석할 수조차 없었다(장례식에는 부인 자클린, 아리아스 등 6명만 참석할 수 있었다). 며칠 뒤 24살의 손자는 락스를 삼키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리고 동생 마리나에게 유언 같은 말을 남긴다.
“비겁하고 천박해. 피카소 제국은 네가 의학 공부하는 걸 거부했어. 피카소 제국은 네게 모든 문을 닫았어. 그런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돼. 그래서 난 마지막 가출을 했어. 너를 구하기 위해.”
피카소는 “한폭의 그림은 더하기들의 총합이지만, 나에게 한폭의 그림은 파괴들의 총합”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가 사랑한 수많은 여성들도, 마리나를 포함한 가족들도 위대한 창조를 위해 파괴돼야 했다. “그의 동물적 성욕에 정복당한 여자들을 그는 길들이고, 현혹시키고, 흡입하고, 자신의 화폭 위에 으깼다.” 마리나는 정신상담을 통해서야 자신이 몰랐던 할아버지를 발견한다. 돈·가족·애정·존중 등 전통적 가정의 일상을 이루는 수천 가지를 하잘것없는 것으로 취급해야 가능했던 할아버지의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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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에게 보내는 전적인 신뢰와 우정
그렇다면 아리아스에게 일관되게 보낸 호의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피카소는 죽을 때까지 공산당원으로 남았다. <피카소의 이발사>의 지은이는 이를 “모순투성이인 그의 삶에 더해진 또 하나의 역설적인 풍경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했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바는 그렇게 모순적이거나 역설적이지 않다.
아리아스는 스페인과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무장투쟁을 한 공산주의자였고, 이 때문에 프랑코의 파시즘이 지배하던 조국 스페인으로부터 망명해야 하는 처지였다. 피카소 역시 스페인의 정치현실 때문에 조국을 등진 망명자였다. 아리아스의 이발소는 스페인 공산당원들의 회합장소였고, 피카소는 냉전 시기에도 스페인 공산당 등을 지원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을 팔았다. 이들은 사상적 동지인 셈이었다. 또 피카소가 1950년대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 동참하자 미국은 그의 입국을 거절했고, 이후 피카소 스스로 미국을 찾지 않았다.
아리아스가 피카소의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아리아스의 성품이 중요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는 화가의 신임을 얻으려고 애쓴 일이 결코 없을 만큼” 자유롭고 당당했다. 언제나 낡은 샌들과 해진 반바지, 그리고 구멍 난 셔츠 차림의 피카소처럼 아리아스는 물욕이 없었다. 피카소가 죽은 뒤, 그로부터 받은 작품 60여점을 팔지 않고(한 일본인이 백지수표까지 내밀며 사들이려 했으나), 스페인의 고향 마을 뷔트라고에 피카소 미술관을 세워 그와의 우정을 기렸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