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 소설읽기와 부끄러워하기
-소설《봄날》의 서문을 읽으며-
모든 소설가가 모두 같은 이유로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리라. 또한 모든 독자가 모두 같은 이유로 소설을 읽는 것도 아니리라. 이런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소설가는 도대체 왜 소설을 쓰고, 독자는 아니 우리는 도대체 왜 소설을 읽는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를생각해본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 임철우라는 소설가가 1980년 5월 광주의 일을 5권의 소설로 써냈다. 우리는 한때는 그것을 《광주사태》라는 이름으로 쉬쉬하다가, 이제는 《광주 민주화운동》이라 부른다. 그 사건은 《모래시계》와 같은 멜로드라마의 소재로까지 이용되어 TV 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었다.
특히 나의 대학시절의 뜨거운 사건에 관한 것이기에, 나는 전 5권을 다 읽고는 싶었지만, 정신적으로 쫓기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거니와 솔직히 집사람〔자신은 이미 다 읽은 후이다〕의 <아니, 공부 안 하고 뭘 하우?>하는 핀잔도 피하려, 작가의 서문〈책을 내면서〉만을 읽기로 작정하고 소설책을 들었다.
임철우는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책을 내면서〉 라는 글을 실어, 그가 왜 이 소설을 썼는가를 밝힌다. 작가는 그 사건을 대학 재학 4년 중에 직접 경험하였으며, 그것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처라고 개인적 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소설가로서 그 기억을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의무가 있다 생각되어, 그 때의 일을 가능한 한 소설가의 상상력을 억제하고 증언, 기자수첩, 방송, 신문,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등을 참고하여 객관적으로 사실을 재현하려 노력했다고 자신이 소설을 쓸 때 채택한 방법도 밝힌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것이 단지 소설로서만이 아니라 비교적 사실에 충실한 기록물로서도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작품을 써왔다 라고.
사건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직접 겪은 광주 사람들에게 그 때의 상처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것인데, 광주 밖의 사람들은, 마치 <말끔히> 단장된 망월동의 묘역처럼, 역사 속의 해묵은 사건으로 <말끔히> 정리되기를 바라는 듯하다는 말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들렸다. 또한 이 소설을 광주사람들의 <지겨운 넋두리나 탄식으로 듣지 말아달라>는 말은 광주의 울부짖음으로 나의 귀를 후려치는 듯했다. 버려진 도시에서 그해 봄날 열흘 동안 그렇게도 한없이 기다리던 <구원의 손길은 끝내 어디에서도 와주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소설을 읽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사실, 나는 작가가 10년에 걸쳐 고통스럽게 썼다는 이 장편소설은 나중에 읽고, 서문만을 읽기로 마음먹었는데 어느 샌가 책장을 계속 넘기고 있었다. 집사람의 눈을 피해...
임철우가 소설을 쓰게된 동기에 대한 얘기와 그가 채택한 방법, 그리고 그의 바람이 무엇보다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 개인의 경험을 쓰는 것이 어떻게 전체 광주시민의 경험의 수준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을까? 당시에 대한 직접적 증언과 허구의 예술작품인 소설과는 어떻게 다르며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리고 당시, 같은 대학생으로 통제되고 제한된 소문만을 접할 수 있었던 나는, 독자로서 어떻게 이 소설을 읽어야 할까? 등의 질문이 책장을 계속 넘기게 했다.
이런 호기심과 질문은 소설에 대한 꼼꼼한 읽기와 분석이 요구된다고 본다. 역사적 사실이 소설가의 허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인가? 소설가의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의 복원에 힘을 실어주는 것인가?답은 질문처럼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마지막 순간까지 서울, 부산, 인천 등의 구원을 손길을 기다리던 광주와 그 도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 모든 분석장치들을 내팽개치고 제5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맞이하고 말았다.
나는 당시 다행히〔?〕그 도시 사람들이 맞닥뜨린 총구를 피할 수 있는 서울에 있었다. 거의 아무것도 모른 채... 생각은 꼬리를 문다. <아무것도 모르면 책임은 회피되는가? 떳떳할 수 있는가? >
또 다시 5월을 보내며, 두 가지만은 지적하고 끝내자.
첫째, 그때 그일(학살극)의 주역들의 오만한 목소리가 아직도 우리 가까이 에서 들려온다. 그렇게 방치해 두는 한, 우리도 잘못된 역사의 공범자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으리라.
둘째, 임철우의 《봄날》은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류의 책들보다는 광주 밖의 사람들에게 더 많이 읽히며, 사실을 전해주며, 부끄러운 마음을 흔들어 놓으리라, 나는 생각된다.
'프랑스 리포트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 선진국의 문화기획: 발자크 탄생 200주년(1999년 가을) (0) | 2007.05.21 |
---|---|
보브와르의<제2의 성>발간 50주년 기념 파리국제회의(1999 여름) (0) | 2007.05.21 |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어 문학- -아프리카 작가 쿠루마의 소설(2000 가을, 라쁠륨) (0) | 2007.05.17 |
빅토르 위고 탄생 200주년-19세기 프랑스의 문학과 정치적 총화(2002 봄, 라쁠륨) (0) | 2007.05.17 |
스리지-라-살 국제문화센터를 찾아서(1999, 문화예술) (0) | 2007.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