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브와르의『제2의 성』발간 50주년 기념 국제회의 파리에서 열려
-여성해방운동, 여권운동, 여성운동
어떤 책보다도,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에 의해 보봐르는 일상적 삶을 살아가던 동시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1949년『제2의 성』으로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여권운동에 불을 지폈다. 지난 1월 19일부터 23일까지 37개 국가의 여권 운동가 및 연구자들이 그녀가 태어난 도시 파리에 모였다.
80년에 보봐르와 함께 창간한 잡지 『새로운 여성문제』의 발행인인 크리스틴 델피는 이 회의를 파리에서 개최하게 된 이유를 첫째, 보봐르 또는『제2의 성』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프랑스의 분위기와, 여권운동연구나 여성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고 세계의 중심이라 자만하는 지적(知的) 지방주의에 빠진 프랑스에 자극을 주고, 둘째,『제2의 성』만을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앵글로-색슨 계의 경향에 『제2의 성』이후 37년간 글을 쓰며 70년대의 거의 모든 저항적 여권운동에 참여했던 '파리의 보봐르'를 새롭게 인식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회의는 특히 지난해 연말부터 연초까지 프랑스의 상-하 양원과 여성계를 뜨겁게 달궜던 여성의 수적 평등권(parité)에 대한 토론이 끝난 직후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남성이 독점하고 있는 의회에서 남-여성의 대표를 같은 수로 선출하는 조항을 명기하는 헌법 수정안이 하원은 통과했으나, 대표를 자유롭게 선출할 국민의 권리에 위배된다는 의견에 밀려 상원에서는 부결되었다. 여성계는 법에 의한 쿼타는 오히려 여성의 자율권을 모독한다고 반대하는 쪽과, 남-여성이 진실로 동등하게 의회 등에서 국정을 논할 수 있다고 적극 찬성하는 쪽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맞섰다.
1000여 쪽의 방대한 양과 꼼꼼한 분석으로 유명한『제2의 성』은 실존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 지배 사회의 메카니즘들을 분석함으로써, 여성 해방의 길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오늘날 이의를 달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제2의 성』의 출간시 프랑스의 좌우파는 하나로 똘똘 뭉쳐 그녀의 주장에 맞섰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 의해 여성 해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남성을 억압자로 생각한다고 공격하였다. 보봐르 전문가인 실비 샤프롱에 의하면, 당시 카톨릭 중심의 보수 우파 반대자들은 피임이나 자유 낙태 주장을 신경증, 퇴폐, 동성애 등과 관련시키면서까지 비난하였다고 한다. 지방 도시 캉의 고등학교 철학 교사는 학생들에게 직설적인 성용어를 사용한 보봐르의 책을 읽게 했다고 징계당할 정도로 당시는 성에 보수적인 시대였다. 이와 같이『제2의 성』은 발간 초기에는 스캔들로만 여겨졌고, 60년대에 미국 여권운동의 '성경'으로 읽혀지다가, 70년대에 비로소 유럽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평가된다.
보봐르는『제2의 성』발간 이후 대담, 토론을 거쳐 생각을 바꾸고 보충하지만, 발간시의 생각을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 낙태와 피임을 주장하고, 남-여성의 차이(차별)를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여성의 특수성이나 독특성을 주장하는 차별-차이론적(différentialiste) 여권운동에는, 흑인 지배를 위해 서구가 조작하여 흑인들에게 부과한 네그리튀드(négritude:흑인성, 흑인다움) 개념에 해당하는 '여성성(féminitude)' 개념으로 후퇴할 위험이 있다고 반대하였다.
이번 회의에는 『제2의 성』에 관한 다양하고 때론 모순되는 130여개의 발표가 있었다. 회의를 계기로 촉발된 보봐르의 여성적 본성(여성성), 임신, 출산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논쟁을 지면관계로 간단히 소개해 보겠다.
작가이며 문학 교수인 다니엘 살르나브는, 본성이나 생식에 기초한 본성주의자(자연주의자)의 주장은 여성을 생물-생리학적 운명에 가둘 위험이 있다고 비판하면서, 성차이(차별) 정책에 의해 여성은 해방되기는커녕, 여성의 육체와 시간 그리고 존재를 착취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부드러움, 인내, 온화함 등, 여성의 특수한 자질이 강조되는 상황이나 역사를 비판-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차이론자들은, 여성이 세상과 맺고 있는 특수한 관계인 여성적 본성-특수성(물론 여성 자신이 계속 발견해야 할)은 남성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이나 고유의 경험을 낮게 평가하여 남성적 가치에 종속시킨다고 반박하며 보봐르의 주장은 남성적 세계관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임신과 출산에 관하여, 보봐르는 임신 반대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임신 자체를 문제삼은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의무나 소명으로 인식된 임신을 문제삼은 것이라고 살르나브는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회당 출신의 현 수상 죠스펭의 부인이자 사회학자인 실비안 아가생스키는 보봐르의 기본 노선에는 동의하지만 여성의 본성, 임신, 몸을 부정하면서 얻은 자유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여성 작가인 낸시 휴스턴은, 임신이 여자의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지만(보봐르의 주장),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라 주장하였다. 즉 부모가 된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며 동시에 고통스러운 것으로, 부모가 되면 자유로울 수는 있지만, 결코 홀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뀐다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진한 감정을 예로 들었다.
이 국제회의에는 별도로,『제2의 성』의 출간시 논쟁의 중심에 있던 여권운동 투사들의 증언과, 60-70년대의 피임, 자유 낙태 운동가들의 증언 시간도 마련되어, 추상적 학술 토론을 구체적이고 생생한 만남의 자리로 만들었다. 크리스틴 델피는 여권 운동의 역사가 잊혀지고 있다고 환기하며, 1970년의 여권운동은 과거의 운동들을 망각하여, 책의 제목을 『여성 해방 원년』이라 붙이는 실수를 범하기도했다고 자신의 운동 경험을 반성하였다. 이 국제회의의 제일 큰 뜻은『제2의 성』을 여성들끼리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자신에게 끊임 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여권 투쟁가들이 항상 겪어왔던 '망각'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투쟁하거나 반성할 때, 기억 없이 출발하는 것은 반복에 빠질 뿐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여성 역사학자인 미셸 페로는 보봐르의 사상은 무기가 되고 현실이 되어, 여성들은 이제 자식을 원하며 동시에 사회적 역할의 담당을 열망하여 대학에 등록을 하고, 모든 직종의 직업을 요구하게 되었다고 그 영향을 요약하면서, 아직도 프랑스에는 6-7개의 대학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역사와 여권 운동의 역사가 미국처럼 대학 교과과정으로 자리잡지 못하였지만, 다행히 교수자격시험 프로그램에 성차별(차이)의 문제가 포함되어 하나의 학문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고 프랑스의 현실을 자리매김하였다.
이제 50살이 된 『제2의 성』에 대한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사실만은 모두 부정하지 않았다. 세계 곳곳의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대하기 위해서, 혹은 여성의 조건을 생각하고 해방의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 자유를 꿈꾸는 여권 운동에 넘어야 할 많은 장애물이 보인다. 차이론자와 평등론자 사이의 대립이 나에겐 때로 장애물로 보인다. 남성이란 외부의 적도 커 보이지만 여성 내부의 적도 그만한 크기로 보인다. (1999년 여름, 라쁠륨)
'프랑스 리포트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의 문학상(1999년 겨울) (0) | 2007.05.21 |
---|---|
문화 선진국의 문화기획: 발자크 탄생 200주년(1999년 가을) (0) | 2007.05.21 |
임철우의 소설 <봄날>에 대하여 (0) | 2007.05.17 |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어 문학- -아프리카 작가 쿠루마의 소설(2000 가을, 라쁠륨) (0) | 2007.05.17 |
빅토르 위고 탄생 200주년-19세기 프랑스의 문학과 정치적 총화(2002 봄, 라쁠륨) (0) | 2007.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