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포트/책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어 문학- -아프리카 작가 쿠루마의 소설(2000 가을, 라쁠륨)

빠리 정병주 2007. 5. 17. 07:01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어 문학-

                                  -아프리카 작가 쿠루마의 소설(2000 가을, 라쁠륨)

 

  한국 소설과 관련된 기쁜 소식을 한가지 전한다. 프랑스의  4대 문학상의 하나인 페미나(Femina) 문학상의 2000년 번역소설 부문의 후보에 한국 작품이 올랐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소설가 이승우의 『생의 이면(L'Envers de la vie)』(고광단-쥐테 공동 번역, 쥘마(Zulma) 출판사)이 여성 심사위원들로만 구성된 이 상의 후보로 선정된 것이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공쿠르, 페미나, 메디치, 르노도 등 4대 주요 문학상의 후보자와 수상자가 홍수처럼 발표되었다. 예전엔 수상이 결정된 후에나 관심이 갔었지만, 올해는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에 관련된 논쟁과, <세계화 시대의 한국 문학>을 특집으로 삼은 『라쁠륨』지난 여름호가 있었기에 몇 차에 걸쳐 나누어 발표되는 후보자 명단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문학상이 프랑스 소설 부문과 신인상 부문으로 나뉘어지는데 페미나 상엔 번역소설 부문이 추가되어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최근 프랑스어로 번역되는 한국 작품의 수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 수가 워낙 적어 일본이나 중국의 작품에 비하여 프랑스 독자와 언론의 관심이 미미한 편이다. 우리 작품이 후보에 올라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최근 우리 영화 이야기가 파리의 신문 『르몽드』나 『리베라시옹』등에 심심찮게 실려, 혹시나 하는 기대로 페미나 상의 후보 리스트를 훑어 내려갔던 것이다.󰡐이승우󰡑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나는 나의 기대가 짓밟히지 않은 것에 안심했고, <혹시나>에서 <아니 정말 있네> 하면서 기뻐했다.

  1,200명의 프랑스인을 대상으로 프랑스 문화를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조사한 결과, 책, 영화, 인터넷, 샹송, TV영화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35세 미만의 조사 대상자는 35퍼센트가 영화를 최선의 수단이라 답하여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였다(한편, 이 조사는 프랑스의 문화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프랑스의 정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많지 않아, 정치에 대한 불신은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자책, 인터넷, 영화 등 영상 매체 앞에서 문자 매체의 위상이 낮아질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12년 전인 1988년 프랑스 문화부의 조사가 보여주었었다.  하지만 2000년 가을의 프랑스 문학판은 더없이 풍성했다. 출판 전문 주간지『리브르 에브도』의 통계에 의하면, 1993년 326권에 불과하던 소설 출판이 올해는  557권(프랑스 소설 347권-76권의 데뷰작 포함, 외국의 번역소설 210권)에 달한다고 한다. 출판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문학책들이 이 계절에 쏟아져나와 문자책의 위축을 예견하던 전문가를 놀라게 하였다. 이러한 문학 출판의 과다 현상을 영상 미디어의 위협에 대한 사멸 직전의 문학의 반짝 현상이라 비관적으로 해석하고 걱정하는 의견도 있다.

  흔히 프랑스 문학은 <생제르멩데프레(Saint-Germain-des-Prés)의 문학>이라고 말해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르트르-보봐르 등의 실존주의 문학의 모태가 이 지역이었고, 중요한 출판사들이 아직도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주요 작가, 비평가, 예술가, 문학 기자들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문학에 관련된 이 동네의 소문과 풍문, 비평이 전세계로 퍼져나가 프랑스 문학 소식으로 행세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이 생제르멩데프레의 문학에 신선한 주제와 새로운 형태로 새 바람을 불어넣어 주는 또 다른 문학이 있어 프랑스 문학은 행복해 보인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지역과 서인도 제도 출신 작가들의 문학이 그것이다. 세네갈의 시인 대통령 셍고르(Senghor), 튀니지의 소설가 멤미(Memmi) 등은 프랑스 밖에서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는 이미 잘 알려진 작가이며, 모로코의 벤 졸룬(Ben Jellounn) 등은 현대의 프랑스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까지 얘기된다.

  이번 호에는 특이한 작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그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작가로 지난 해 <리브르 엥테르(Livre Inter) 상>을 받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여 올해 여러 문학상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작가이다.

  우리에겐 상아 해안(Côte d'Ivoire)으로 알려진 서부 아프리카의 코트디브와르(아이보리 코스트) 출신의 소설가 쿠루마(Kourouma)는 올해 73살의 노작가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편의 희곡과 4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을 뿐이다. 1970년에 발표한 『독립국의 태양들(Les Soleils des indépendances)』은 모든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의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이미 고전으로 통한다. 1990년에는 『돈, 분노 그리고 도전(Monnè, outrages et défis)』으로 신생 아프리카 국가들을 풍자하여 비평가로부터는 주목을 받았고, 작년에 아프리카 독재자를 고발하는 소설 『야수들의 투표를 기다리며(En attendant le vote des bêtes sauvages)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의 한 사냥꾼의 아들이 어떻게 신생 독립국의 독재자가 되는가를 소설로 그렸다. 주인공인 사냥꾼의 아들은 2차 대전과, 인도차이나 전쟁에 참전한 경력으로 갖고 독립된 자신의 나라에 돌아온다. 그는 이웃나라 독재 통치자의 요청에 따라 독재자의 반대자인 공산주의자들의 토벌을 도와주면서 독재자의 통치 방식을 가까이에서 배운다. 그는 자기 나라로 돌아와 쿠데타에 참여하고, 마침내 무당의 도움으로 <골프 공화국>의 정권을 잡아 <코야가(Koyaga) 대통령>이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 보통의 독자는 신문의 해외 토픽란에서나 들어본,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재자인 아이보리코스트의 우푸에-브와니 대통령, 증앙아프리카의 보카사 대통령, 기네의 세쿠 쿠레 대통령, 자이르의 모부투 대통령 등 독재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잊으리라.

  올해 발표되어 주요 문학상의 후보로 주목받는 소설『알라 신은 (지상의 모든 것에) 정의롭지 않다(Allah n'est pas obligé)』는 12살 짜리 소년 비라이마(Birahima)가 자신을 길러준 아주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소년 병사가 되어 라이베리아(Liberia)와 시에라레온(Sierra Leone)의 종족 전쟁에 참전하여 겪는 이야기이다. 소년의 시각으로 부족 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휩싸인 모습이 그려지고, 소년이 전쟁에서 보고 듣고 겪은 고문, 강간, 폭력, 학살, 지휘관들의 광기, 병사들의 소외감 등이 소년의 잔인한 풍자적 시선으로 묘사된다. 이 혼란 상태에 대한 소년 화자의 말을 한 가지만 인용해보자. 󰡒시에라레온은 갈보집이야, 맞아, 광장의 갈보집이야. 라이베리아에서처럼 대로의 도둑들이 나라를 나누어 가질 때, 나라는 단순한 갈보집이야, 그러나 도둑과 각종 협회, 민주주의자들이 서로 뒤엉키면, 나라는 단순한 갈보집 이상의 것이 되어버려.󰡓

  쿠루마는 소년 병사 비라이마 개인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또 한편 실제 인물의 이름도 등장시켜 이 소설이 개인만이 아닌 집단의 역사임을 보여주려 한다. 평자들은 소설『알라는... 』이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근거를 두 가지로 든다. 우선 이 작품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아프리카의 중요한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 또 하나는 이 작품이 아프리카의 언어 문제를 소설화하고 있다는 점.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서구의 식민통치국가의 언어인 영어나 프랑스어의 본래의 의미와 아프리카에서 사용되는 프랑스어와의 의미의 차이를 괄호로 분명히 밝힘으로써, 작가는 아이러니 등의 여러 효과를 유발시킨다.

  쿠루마의 작품은, 서구에 의한 식민통치 이후 아프리카의 가난, 미신 무지가 아프리카에 가져오는 희생과 폭력, 독재를 보여주면서, 그리고 거기에 식민 종주국들의 세련된 국가적-기업적 지원과 방임이 더해지고 있음을, 언어의 문제를 동원하여 죠지 오웰식으로 풍자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있다.

 

  쿠루마의 소설은 아프리카 문학일까 아니면 프랑스 문학일까? 나는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는 아프리카의 한 작가를 소개하면서, 2000년 가을의 프랑스 문학은 아프리카 출신인 쿠루마(Kourouma)의 소설을 외국 소설이 아니라 프랑스 소설로 분류하고, 문학상을 수여하려 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쿠루마의 작품이 프랑스 소설로 분류된 것은 쿠루마의 부인이 프랑스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가 아프리카 출신이기는 하지만 작품이 프랑스어로 씌여졌기 때문이리라. 프랑스 문학은 이 작품을 통해 더욱 새롭고 풍요로운 것이 되고 싶어하는 듯하다. 우리의 시선을 우리의 문학판으로 한번 돌려보자.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쓴 문학? 한글로 씌여진 문학? 문학판에 있는 사람은 이론을 떠나 이 점을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