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뉘 출판사와 TV문학토론프로
-랭동 사장과 진행자 피보-
시락 대통령이 최근 서거한 출판인 제롬 랭동(Jérome Lindon)의 추모행사에 참석한 사실과, 죠스팽 수상이 최근 막을 내린 TV 독서토론 프로 〈문화의 용광로〉의 진행자인 베르나르 피보(Bernard Pivot)를 식사에 초청한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정치인인 대통령과 수상의 동정은〈문화적 예외〉를 주장하려는 프랑스다운 사건으로 보였으며, 관련 출판사와 관련 TV문학토론 프로는 프랑스 문화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되어 소개하고 싶다.
먼저 랭동 씨에 대하여 알아보자. 그는 미뉘 출판사의 사장으로 75세의 나이로 올해 4월에 죽었다. 그는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와 누보 로망(Nouveau roman: 신소설)의 출판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였다. 좌파 성향이 강한 출판인으로 알려진 그의 추모행사에 정치적 견해 차이를 뛰어넘어 우파 대통령이 참석한 것을 기사는 부각시킨다. 또한 기사는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프랑스가 자행한 고문을 폭로하는 책을 내며 검열의 어려움을 당하였던 미뉘 출판사의 대표 랭동과 그 전쟁에 참여하였던 대통령과의 만남의 우연도 부각시킨다.
랭동은 미뉘(Minuit: 심야 즉 한 밤중을 의미) 출판사의 경영인으로, 1981년에 도서 정가제의 제정에 앞장서며 책의 수호를 위하여 지칠 줄 모르고 투쟁을 하였다. 시락 대통령은 추모식에서 <책은 결코 다른 것처럼 제품이 되지 않을 것>이며, <책은 저작권을 희생하면서 끊임없이 복제되고 복사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랭동의 주장이 헛된 외침이 되지 않으리라고 그의 책을 위한 투쟁을 옹호하였다. 랭동은 죽기 직전까지 많은 오해를 무릅쓰며 저자의 저작권의 일부인 대출권을 인정하라는 대출권 요구 운동(공공 도서관에서 반복하여 대출되는 책의 저자에게 국가는 금전적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저작자 협회와 출판계의 집단적 운동)을 정력적으로 펼쳤다.
랭동이 생애를 바쳐 경영해온 미뉘 출판사의 역사를 살펴보며, 한 개인이 한 나라의 문화적 삶에 끼친 영향을 가늠해 보자. 미뉘의 책은 내용을 떠나 겉모양이 아주 특별나다. 이 출판사의 책표지는 화려한 칼라와 이미지의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가려는 듯, 그림이나 사진도 없고 흰색 표지에 파란 선으로 테를 두르고 그 안에 파란색 활자로 제목과 저자 이름, 그리고 출판사 로고만이 있을 뿐이다. 로고는 Minuit를 뜻하는 M자 어깨 위의 별 하나를 얹어놓은 모습이다. 나치 치하의 어둠 속에서 항독운동의 별이 되겠다는 야심을 상징하리라.
책표지의 특이함에 걸맞은 책내용의 특이함을 미뉘의 편집 방향에서도 찾아보자. 편집 방향은 미뉘의 탄생과 50년의 역사와 맞물려 있는 둣 보인다.
미뉘 출판사는 2차 대전 당시인 1941년 독일 점령 치하의 파리에서 베르코르(Vercors)에 의하여 비밀리에 만들어진다. 첫번째 출간한 책이 유명한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이고 엘뤼아르, 아라공, 모리악의 책을 비밀리에 출간되어 레지스탕스 운동과 함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비밀리에 읽혀진다. 프랑스의 승리와 더불어 지하 출판사의 처지를 벗어나지만 경영의 어려움 속에서도 항독운동과 관련한 기록물을 계속 출간하다가 1948년 랭동에게 경영권을 넘긴다. 이후 바타유(Bataille), 블랑쇼(Blanchot), 폴랑(Paulan)의 저서를 출간하고 1951년 프랑스 출판문화의 중심 셍제르멩에 자리를 잡는다. 이 해에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던 무명의 아이랜드 작가인 사뮤엘 베케트(Beckett)의 『몰로이』와, 1953년 『고도를 기다리며』의 출간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이후 그의 전 작품을 출간하고 1969년 베케트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미뉘의 작가 발굴 능력은 전세계적으로 평가받는다.
1953년 로브그리예의 소설『고무들』의 출판으로, 누보 로망의 출판사의 서곡을 울리고, 1957년에는 로브그리예의 『질투』, 클로드 시몽의 『바람』, 나탈리 사로트의 『트로피즘』, 뷔토르의 『변형』을 출간, 다음해에 뒤라스의 『모데라토 캉타빌레』를 출판하여 누보 로망의 출판사로 확고하게 자리잡는다.
1956년, 문학뿐만이 아니라 처음으로 피임 문제를 다룬 책을 내어 논쟁을 불러오고, 알제리 전쟁 중 프랑스가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위에 관련된 책을 내어 정부와 대립하여 어려움을 겪고, 1969년에는 팔레스타인 투사들에 대한 책을 내어 중동문제를 다룬다(13년 후인 1982년 학술지 『팔레스타인 연구 리뷰』를 발행).
현실문제에 관련된 서적과 더불어 르코르뷔지에의 현대 건축 이론, 블랑쇼의 문학비평, 옛 파리에 대한 연구 서적들을 간행하고, 프랑스에 알려져 있지 않던 책을 번역, 소개하여 프랑스 지식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는다.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야콥슨의 『일반언어학 서론』,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과 『일차원적 인간』등이 주요 번역서의 나열에 의해 미뉘가 프랑스 지식사회에 미친 충격을 가늠할 수 있겠다.
더불어 1966년 피에르 부르디외의 책임 아래 《공통의 감각》총서를 기획하여 아도르노, 벤베니스트, 부르디외, 고프만, 무넹의 저서를 출판하고, 1946년 바타유가 창설한 월간 서평지 『크리티크』를 인수하고 같은 이름의 총서로 바타유, 들뢰즈, 데리다, 레비나스, 미셸 세르, 리오타르 등의 철학책을 출간한다.
랭동의 출판 인생을 마무리하자면 그가 50여 년간 경영해온 미뉘 출판사는 누보 로망의 작가를 발굴하고,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작가를 배출하면서, 주요 문학상을 독식하고 있는 대형 문학전문 출판사들인 갈리그라세이유(Galligrasseuil)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문학 전문 출판사의 존재를 증명해 보였으며, 위에서 간단히 열거한 현대철학, 예술 및 인문학 분야의 서적들을 출판하여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의 중요한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6년 동안 금요일 밤마다 진행되던 TV문학토론 프로 〈문화의 용광로〉의 종영을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모든 언론이 그 진행자 피보의 떠남을 뉴스로 전한다. 많은 찬사와 비난 속에서 이 프로는 문학과 책읽기를 TV를 통하여 전파하였으며, 이 프로의 성공은 전적으로 진행자 피보라는 인물에 빚지고 있었다.
27년만에 TV를 떠나는 피보는 1973년 〈따옴표를 여세요〉로 문학방송을 시작하여, 1975년부터 1990년까지 724회에 걸쳐〈아포스트로프(Apostrophe: 불쑥 말을 걸기라는 뜻)〉를 진행하였고, 1991년에 다시〈문화의 용광로〉를 시작하여 407회에 걸쳐 프로를 진행하다가 이번에 방송을 마치게 된 것이다. 그는 그 동안 약 1천 2백 회에 걸쳐 문학 역사 종교 철학 정치 예술 과학 분야의 저자 약 5천 명을 초청하여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책에 대한 궁금증을 저자에게 직접 물어보고 작가들 사이의 토론을 이끌어내며 책을 시청자와 연결시켰다.
피보 이전인 1953년 데그로프와 뒤마예의〈모두를 위한 독서(Lecture pour tous)〉라는 프로가 유사한 프로의 효시였으며, 피보의 프로는 없어지지만 뒤랑(Guillaume Durand)이 담당할 〈캠퍼스(Campus)〉가 준비되고 있는데, 탐정소설 만화 등을 추가하여 피보 문학의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 한다.
피보의 프로 덕에 TV 시청자는 나보코프, 에코, 우디 알렌, 솔제니친 등의 세계적 저자를 안방에서 만날 수 있었고, 바르트, 카다레, 쥐스트킨트 등은 명성을 얻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프로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프로가 문화 권력이 되어 책의 판매와 인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초대 작가들이 연기를 하고, 초청자 명단에 들기 위해 작가와 출판사가 출연 작전(?)을 벌인다. 금요일 밤의 방송은 토요일 아침 동네 책방의 판매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축구를 좋아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피보는, 이 프로를 통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좋은 식당을 찾아가는 것과 좋은 책을 찾아 읽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청자에게 보여주려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프로에서 철학자 미셸 세르와 쵸콜렛 만드는 장인이 한자리에 만나 포도주와 음식과 철학을 또는 문학을 얘기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진행자 피보는 방송과 자신이 발행하는 문학 월간지 『리르(Lire-책읽기라는 뜻)』를 통하여 책읽기를 전도하는 한편, 바른 프랑스어를 보존하고 보급하기 위하여 받아쓰기 대회를 주관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여 지식을 새롭게 해주는 낱말 놀이, 철자법, 문법규칙, 낱말의 역사, 미니 사전 등을 제공한다. 엄격하지만 재미있게 꾸며진 이 사이트는 정확한 표현에 관한 질문에 온라인으로 응답하고, 접속자 사이에 토론장을 열어준다.
결론적으로 피보는 TV의 문학토론 프로를 통하여 시청자에게 책과 책읽기를 더욱 가깝게 해주어, TV의 출현으로 책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단순한주장을 물리쳤으며, 인터넷을 통하여 바른 언어와 글쓰기 운동을 실천함으로써 자칫 책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를 본격적으로 맞이할 우리들에게, 프랑스의 출판인 랭동의 일생과 피보의 TV문학토론 프로는 출판과 TV, 인터넷이 앞으로 맺어나가야 할 바른 길을 보여준다. 하겠다.(2001년 가을, 라쁠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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