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종교 그리고 문학
-우엘벡의 『플랫폼』과 네이폴의 『신앙의 종착까지』
전세계를 향해 미국식 자유주의의 위대함을 과시하며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던 뉴욕의 110층 짜리 쌍둥이 세계무역센타 건물이 테러에 의해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외부와 단절된 채 자신들의 원리주의적 회교만이 옳다고 광신하는 아프가니스탄이 미국과 영국의 미사일 폭격으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이번 전쟁을 문화 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죽음을 거부하는 문화가 전쟁의 원인이 되다니, 아! 끔찍하여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격을 앞두고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정치가 갈라놓은 국경을 무시하고 예술가들의 우애를 바탕으로 하나의 유럽을 창조할 수 있는 힘과 지성을 모으기 위해 발칸의 격전지였던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 모였다. 여러 발칸 국가들과 프랑스 독일 스웨덴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터어키 미국 알제리 등에서 작가 번역가 만화작가 음악가 사진작가 배우 영화감독과 지식인들이 과거의 시련을 함께 토론하고 환기하고, 열린 유럽을 건설하기 위하여. 회교적 유산 때문에 잔인하게 공격을 받았으며, 카톨릭과 그리이스정교 유태인 회교도들에 의해 열정적으로 지원을 받았던 도시인 사라예보를 모임의 장소로 택한 것은 강력한 상징이 아닐까?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타 테러 참사가 터진 직후이기 때문에, 증오를 가라앉히고, 뉴욕 시민에게 애도를 표하고, 회교도를 부당하게 의심하지 않으려는, 이런 모임이 더욱 필요하게 보였다.
회교문제와도 관련이 있고, 2001년 여러 문학상의 후보작으로 거론됨과 더불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우엘벡을 소개한다. 그는 이미 1998년 소설『소립자』로 그해의 공쿠르 수상작을 훨씬 앞질러 독자의 사랑을 받았는데, 올해『플랫폼(Plateforme, 플라마리옹 출판사)』을 발표하여 다시 주목을 받고있다. 미쉘 우엘벡은 이 작품에서 서양은 물론 회교원리주의를 비판하였으며, 피가로 신문과 월간 문학지『리르』에서 아랍 인종과 회교에 대한 증오를 직설적으로 주장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리르』의 주장을 옮겨보자:〈가장 얼간이 종교는 회교이다. 코란을 읽으면 어이없어진다. 회교는 위험한 종교이다. 회교가 출현한 이래 그러하였다.(...) 유물론적 가치들은 증오할 만하지만 회교보다는 덜 파괴적이고 덜 잔인하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며 결코 아랍인종과 회교도를 혼동하지 않으며, 작중인물과 작가자신을 구분해달라고 주문한다(작가는 주인공에게 자기와 같은 미쉘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이 공화국인 프랑스가 단죄하는 이념과 도덕을 불법으로 유포하는 우엘벡의 분신이 아니냐 하는 의심을 받고있다). 그리고 신문기자들이 확인되지 않은 자신의 말을 왜곡하였다고 주장한다. 한편, 살인을 옹호하고 증오를 유발하는 작가의 반 회교적 주장과 행동이 상업적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 보는 견해도 유력하다. 프랑스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종차별적 주장이나 제2차 대전 당시의 나치의 학살을 부정하는 주장, 유태인배척주의에 대하여는 유보하고 있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문화부의 공무원인 미쉘은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조용하게 권태로운 삶을 살아간다. 섹스 숍에서 핍쇼를 보고, 아시아 콜걸들의 마사지 살롱을 드나들고, TV를 보다가 잠이 들기도 하면서... 그러던 어느날 섹스관광의 나라 타일랜드를 여행하기로 결심하고 거기에서 여행사의 젊은 간부 발레리를 만나고 프랑스로 돌아와 그들은 연인이 되고, 그들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져 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서로 하나가 된다. 미쉘과 발레리는 다시 타일랜드를 여행하다가 우연에 의해 헤어진다. 작가는 이러한 줄거리를 토대로 성의 국제적인 상품화를 보여주고, 주변 인물들을 통하여 파리의 현대적인 다양한 성풍속(부부교환 성행위 등)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자신이 이전의 작품에서 시작했던 현대의 공허함과 타락의 리스트를 작성한다. 작가는 미학이나 정치 문제에는 무관심하지만 아무 쓸모 없는 무에 불과한 정보의 시대에 빠져있는 파리의 소시민을 열거한다. 작중인물인 발레리는 말한다: 〈난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아요. 세상에는 사랑, 신, 이상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 단어를 말하지 않고 잊어버리고 상실하였으며 비웃고 있으며, 그 대신 포르노나 커뮤니케이션, 비즈니스 라는 말로 대체했어요〉. 작품의 끝부분에서, 미쉘은 이기주의와 마죠키즘, 죽음의 냄새를 뿜어내는 서구에서 탈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말한다:〈그 안에서 살 수 없는 시스템을 우리는 만들었고, 그 시스템을 계속해서 수출하고 있어요〉.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비평가 다니엘 롱도는, 이 작품은 서구와 그 속에서 살고있는 사람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타락한 유럽인에 관한 사회학적 소설이며, 작가는 완벽하게 무미건조한 어조를 선택하면서도 선동을 배제하지 않는 문체로 말한다고 평한다. 주인공 미쉘은 우둔하고 파렴치하며, 쾌락적이며 평범한 꿈을 간직하고 있으며, 삶에 대한 우수에 잠기기도 하는데 현대는 이런 인물을 무제한으로 재생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주인공처럼 고독에 잠겨 인간을 혐오하면서 아이러니컬하고 깨어있는 시선으로 인간세계를 바라보지만 행복추구를 포기하지 않는 인물의 유형을 요즈음 프랑스에서는 우엘벡적인 인물(type houellebecquien)이라고 부른다.
기쁜 소식 하나. 라쁠륨 2001년 봄호에 소개되었던 한국계 미국작가 이창래의『제스처 라이프(Gesture Life)』가『과거의 어두운 불(Les Sombres Feux du Passé, 롤리비에 출판사))』이란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소개되어 2001년 페미나 문학상(Femina)과 메디치(Medici) 문학상 외국소설 부문의 후보작으로 뽑혔다. 작년에는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 페미나 문학상의 외국소설부문의 후보작에 선정되었었다. 프랑스 문학계는 이창래를 이민문학의 상징적 작가의 한 사람으로 소개하면서, 이 작품이 외국인의 정착문제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기억의 심연 속으로 침잠하는 훌륭한 소설이라고 평가한다. 과거의 망령과 화해하지 못하는 인물의 고백인 이 소설을 〈고통과 동요의 생생함 속에서 다듬어진 다이아몬드〉라고 평하면서, 완전무결한 시나리오와 찢어질듯 아프며 율동적이고 바늘로 찌를 듯한 표현이라고 격찬하였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다듬고 있을 때 영국작가 네이폴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문학적 경향이 이창래의 것와 같은 이민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의 최근 작품이 뉴욕의 참사와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근간이 되는 회교문제를 다루고 있어 간단히 언급하겠다. 네이폴은 식민지였던 자신의 나라 트리니티드 토바고의 문화적-정신적 궁핍에 괴로워하고, 자기 조상들의 나라 인도도 가깝게 느끼지 못하며, 피식민지인 강대국 영국의 전통적 가치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네이폴의 아픔과 이창래의 그것은 아마 비슷하리라. 문제는 느낌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냄이다.
네이폴은 1998년 이란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등 비아랍계의 4개 아시아 회교국을 여행한 후, 회교로의 개종과 아이덴티티의 상실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신앙의 종착까지』를 썼다고 한다. 이 나라들의 〈회교가 그들로 하여금 과거, 결국 그들 자신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또한 회교는 단순한 의식의 문제나 개인적인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요구를 제시한다고 네이폴은 주장한다. 따라서〈개종자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등을 돌려야 한다〉. 1994년 렉스프레스와의 회견에서, 그는 회교는 개인의 의식에 어떤 빈자리도 남겨두지 않으며 예언자의 법률은 변형될 수 없고, 개별 회교도의 기본적 의무는 예언자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그의 주장에서 회교를 〈잘못 믿어진 종교〉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래의 참 종교가 그런 것일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네이폴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우리네의 여러 종교행태를 본다면 어떤 책을 또 쓸 수 있을까? 테러와 살상과 전쟁이 전지구를 뒤덮는 시절에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2001년 겨울, 라쁠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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