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포트/책

스리지-라-살 국제문화센터를 찾아서(1999, 문화예술)

빠리 정병주 2007. 5. 17. 06:35
 

스리지-라-살 국제문화센터를 찾아서


   토론의 나라 프랑스에는 각종 주제에 대한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한 수많은 협회와 단체가 존재한다. 지금은 지식인들의 국제적인 토론 장소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이 〈국제문화센터(Centre Culturel International de Cerisy-la-salle)〉도 처음에는 지식인들의 작은 토론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문학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던 80년대의 문학도들은 지금은 없어진 홍성사의《홍성신서》로 번역된『현대비평의 이론』이란 책을 기억할 것이다. 새로운 문학연구방법론에 관련한〈새로운 비평이냐 새로운 사기냐?〉논쟁에 대한 1966년 스리지에서 열렸던 토론을 번역했다는 역자의 설명 중 스리지 부분은 나의 눈을 끌지 못하였다. 이 책을 처음 대할 때 나는 당시 스리지-라-살(Cerisy-la-salle)이라는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이고 어디에 있는지 백지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 땅에 와 공부를 하며 이 센터의 프로그램을 알리는 포스터를 자주 접하면서도, 나는 ‘많은 학술회의를 위해 장소를 빌려주는 곳 중의 하나이겠지‘ 하고 관심을 접어 두었었다. 그런데 97년 <박경리 토지 문화재단> 관계자와 함께 여러 문화단체를 방문․조사하다가 이 문화센터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특성을 알게 되면서 한국에도 이런 곳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대부분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경우에도 많은 문화단체들이 문화의 중심인 파리에, 혹은 적어도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이 문화센터는 파리에서 동서 쪽으로 320여 Km나 떨어진,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촌구석, 바닷가 작은 마을인 스리지-라-살에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을 우리네의 문화-역사적인 삶에 굳이 끌어 맞추어 본다면, 영화를 좋아하는 구세대에게는 잊지 못할 1964년 캬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무대인 서부 프랑스의 군항(軍港) 쉘부르(Cherbourg)가 바로 옆에 있고, 요즘 신세대라면 한번쯤 맛보았을 까망베르 치이즈도 바로 이 지방 노르망디에서 생산된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바로 이 지역의 해변에서 전개되었었다. 칼바도스(Calvados)라는 독주(毒酒)를 술을 좀 즐기는 사람이라면 맛볼 기회가 있었을 터인데 바로 이 지방의 사과로 담근 술이란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우리네의 삶과 조금이라도 연결지으려 여러 얘기를 했지만, 이 문화센터는 한마디로  문화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촌동네에 자리잡고 있다는 위치적 특성이 이 곳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고 좀 과장하여 말한다면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곳에 와서 며칠 동안 도시의 소음을 벗어나 진지하게 한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 약 90년 전 이런 토론 장소를 기획한 사람들의 의도인 듯하다.

  이 문화센터는 각국의 예술가, 학자, 지식인 사이의 토론과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퐁티니-스리지 친구협회(Association des Amis de Pontigny-Cerisy)〉에 의해 6월부터 9월까지 스리지 고성(古城)에서 회의를 개최한다.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나라가 오랜 전통을 간직한 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특이한 토론 공간의 주춧돌은 파리 교외 세브르(Sèvres) 고등사범학교의 철학 교수 폴 데자르뎅(Paul Desjardins)에 의해 놓여졌다. 시인이며 작가이기도 한 그는, 죄없는 한 유태인 장교를 위하여 19세기 말, 작가 에밀 졸라 등 지성인들의 적극적인 발언과 참여로 지식인의 사회참여운동의 계기가 된 드레퓌스 사건 당시에 열렬한 드레퓌스의 지지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06년 폐허가 된 채 버려져있던 부르고뉴( Bourgogne) 지방의 퐁티니의 수도원을 구입하여, 1910-1914년, 1922-1939년 기간동안 저명한 학자나 지식인, 예술가를 초청하여 '10일 동안(décade)' 숙식을 같이하며 문학, 예술, 사회, 정치에 관하여 토론을 하였다. 특히 앙드레 지드의 문학잡지『누벨 르뷔 프랑세즈(Nouvelle Revue Française)』의 창간 및 발전과 밀접히 관련을 맺고, 당시의 연극, 철학, 종교, 예술 등의 문화운동과 관련된 주제를 많이 다루었으며, 정치적인 주제를 자주 다루면서 토론을 통하여 유럽협력을 지지하는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퐁티니의 데카드'는 당시의 지성인들 사이에 이미 알려진 모임이었다. 당시에 초청되었던 인물들을 살펴보면 이 모임의 무게와 국제적인 명성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프랑스 쪽 사람으로는, 과학철학자로서 상상력의 의미를 파헤쳤던 바쉴라르(Bachelard), 과학철학자 코아레(koyré), 작가 지드, 발레리, 말로, 마르텡 뒤 가르, 사르트르, 뷔토르 등이 주목할 만하고, 부르조아 정신을 기독교와 관련지어 설명한 독일의 망명 철학자 그뢰튀젠(Groethuysen), 독일의 그리이스 역사학자 퀴르티우스(Curtius), 미국의 원자폭탄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Oppenheimer), 극작가 오슨 웰즈(Welles) 등이 초청되었었다. 현재 공동대표로 있는 손녀 캬트린 페루(Catherine Peyrou)는 인터뷰 중, 사르트르나 뷔토르 등은 실존주의 철학자나 누보로망 작가로 아직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초청되었었다고 설명을 하며, 그의 할아버지 데자르뎅의 인물을 보는 안목에 대해 특히 자랑스러워하였다.

  1940년 폴 자르뎅이 죽자 그의 부인과 딸 안느(Anne Heurgon-Desjardins)는 퐁티니의 수도원을 교회에 돌려주고, 도서관의 일부를 파리 교외의 르와요몽(Royaumont) 문화센터에 매각하고, 가족이 전부터 소유하고 있었으나 제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스리지 성을 수리한다. 그러다, 1946년 그 성과 부속 건물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수리․복원되는 동안 〈퐁티니 협회〉 회원들과 '퐁티니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르와요몽 문화센터에서 소규모의 토론을 다시 시작한다.

  1952년 딸 안느는 〈퐁티니-스리지 협회〉 회원들과 〈스리지 문화센터(Centre Culturel de Cerisy)〉를 창설하여 스리지 성에서 아버지의 유업을 본격적으로 되살린다. 1977년  딸 안느가 죽은 후 손녀 에디트 외르공(Edith Heurgon)과 캬트린 페루가 문화센터의 관리를 공동으로 맡아 활력을 불어넣고, 토론 주제를 다양화하고 활동을 좀더 조직화하는 한편, 시설의 현대화에 애쓴다.

  이 문화센터는 중세의 건물을 포함하고 있는 17세기의 고성(古城)으로 거대한 공원과 부속 시설을 갖고 있다. 회의실, 도서관, 살롱, 비디오 실 등의 연구작업 공간과, 침실, 음악감상실, 댄스장, TV시청실, 탁구장, 정구장 등의 휴식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약 20km 떨어진 곳에 경치 좋은 바다가 있어 산책을 하면서 토론을 할 수도 있으며, 주변에 역사적인 수도원, 고성, 성당, 성곽 등의 유적도 많이 있다. 특히 70km떨어진 지점에, 프랑스 내에서는 파리를 제외하고 최대의 관광객을 자랑하는 옛 수도원 몽생미셸(Mont-Saint-Michel)이 있어 토론 이외에 역사유적을 찾아 볼 수 있는 또 다른 지리적 잇점도 있다.

  이 문화센터와 퐁티니­스리지 협회의 관계에 대하여 알아보자. 센터의 운영을 후원하는 이 협회는 현재 파리 제1대학의 명예교수이며, 들뢰즈와 푸코 등의 스승으로 유명한 철학자 강디약 (Gandillac)이 회장이고, 출판인 크리스티앙 부르조아, 문학교수 안느 클랑시에, 중세역사학자 자크 르 고프, 산업사회와 68 학생혁명의 연구로 유명한 사회학자 투렌느 등 15명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주변의 지역단체들로 구성된 〈지방후원협회〉의 후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센터는 퐁티니 토론모임의 창설자인 폴 데쟈르뎅의 가족인 에디트 외르공과 캬트린 페루가 공동대표로 있는 〈운영위원회〉에 의하여 운영되며, 아프리카 전문의 사회학자 겸 인류학자인 발랑디에, 여성작가 엘렌 식수, 스탕달 전문가 크로지에, 해체철학자 데리다, 문학연구가 쥬네트와 토도로프, 욕망의 소설 이론가 지라르, 소설가 투르니에, 사회학자 모렝, 누보로망 이론가 리카르두, 누보로망 작가 로브그리예와 클로드 시몽, 과학철학자 미셸 세르, 철학자 리쾨르,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에코, 제 3세계인 튀니지의 소설가 알베르 멤미, 미국의 사회학자 기딩스 등 40명이 주요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좀 과장하여, 이 문화센터의 활동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한다면 20세기 프랑스의 지성사는 물론 세계 지성사의 축소판이 될 수 있으리라고 공동대표 캬트린은 다시 한번 자랑한다.

  이 문화센터의 최대 특성은 무엇보다 토론의 분위기이다. 세계적인 학자나 전문가, 젊은 연구원, 학생 혹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 일주일에서 열흘 동안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밤이 늦도록 토론을 하다가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운이 좋으면 인간적인 만남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스리지만의 장점이다. 모든 것이 토론 참가자의 동의에 의하여 결정되는 독특한 '만남의 분위기'를 회의에 한번 참가해 본 사람은 잊지 못할 것이라고 캬트린은 강조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토론 분위기와 참가자 확보가 보장되는 명성으로 이 국제문화센터에서 회의와 토론을 기획하려는 학회나 모임이 많아 신청자를 확보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며, 이미 2000년을 위한 일정도 거의 확정된 상태라 한다.

  토론의 주제는, 단체나 학회에서 회의의 목적과 발표자의 명단을 제출하면 각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지금까지 과거와 현대의 중요한 지적 흐름이나 예술 활동에 관한 약 400개 이상의 모임이 있었다. 회의의 결과는 간행하는 것이 원칙이며 현재 약 200여권이 단행본으로 간행되었고, 일부는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문고판, 특히《10-18》총서로 간행되고 있다. 

  또한 문화센터가 자리잡고 있는 노르망디 지역의 발전에도 기여하기 위해, 국제적인 모임과는 별도로 이 지역의 캉(Caen) 대학과 공동으로 매년 여름 2회 노르망디에 관한 회의를 개최하고 있고, <지역문학센터>와 문학학술회의를 기획하고 있으며, <쿠탕스(Coutances) 지방 예술역사 협회>와 공동으로 문화재 평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지금은 파리에 있지만 2001년까지 캉의 아르덴느 수도원으로 이전 예정인 <현대출판기념연구소(IMEC)>가 보유하고 있는 저자들의 원고에 관한 학술회의도 기획하고 있다.

  이제 아주 중요한 돈 얘기를 알아보자. 자본주의의 한 복판에 살고 있는 우리가 돈 얘기를 빼놓고 아무리 의미있는 얘기를 한들 공염불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운영은 철저하게 비영리 공익재단인〈퐁티니-스리지 협회〉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이루어 지는데 두 가지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총예산의 80퍼센트는 현재 총 1,500여명인 회원의 여러 종류의 연회비와 학술회의 참가자들의 참가비로 조성되며, 나머지 20퍼센트만을 국립 책연구소, 문화부의 지방문화활동국, 바스 노르망디 지방의회, 망쉬(Manche) 도의회, 스리지 시의회 등의 정규적인 보조금으로 충원한다. 이러한 스리지 문화센터의 운영 자금 조성 방법은 문화, 예술, 학술 활동의 발전 방향의 모색을 위해 모여, 정부의 지원 부족만을 소리 높혀 얘기하는 우리의 지식인이나 학자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듯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연회비는 200프랑 (IMF이전의 환율로는 1프랑에 150원 정도 하던 것이 지금은 210원 정도 하니까 42,000원 정도 된다)이며, 28세 이하의 학생은 특별히 60프랑이고, 개인 후원회비는 350프랑, 단체 후원회비는 700프랑이다. 일반적으로 토론 및 회의는 5-10일간 계속되며 하루 참가비가 숙식을 포함하여 약 430프랑, 28세 이하의 학생은 절반인 210 프랑이다. 회의 참가비는 회의 시작 전까지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문화센터 안에서 숙식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미리 신청하면 부분적인 참가도 가능하다. 여기에서 한가지만 덧붙이고 넘어가자. '평등'의 나라 프랑스인데도 회비나 참가비를 모두 '같은 액수'를 내지 않는다. '적극적 불평등(inégalité positive)'이라 하여 약자를 보호한다. 학생은 당연하고, 참가비가 부담이 되는 박사과정 이상의 젊은 연구원이나 교사는 회의의 시작 시기인 6월 1일 전까지 증빙서류를 첨부하여 참가비 할인 신청을 할 수 있다. 보다 많은 참가를 유도하려는 이런 세심한 '제도적' 배려는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1999년과 2000년에 예정된 회의와 토론의 주제를 열거해 보겠다. 1999년의 주제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전망 1, 시민문화와 도시민주주의, 문화적 차이, 시인 앙리 미쇼, 소유, 육체-영혼-정신, 영화 화면에서의 일인칭 '나', 텍스티크-표현의 논리, 이딸로 깔비노, 하이예크, 수학과 무의식, 기업과 도시 사이의 노동, 공간의 논리와 장소의 정신, 웅변과 내적 진실, 바이외(Bayeux) 타피스리-역사를 수놓는 기술 등 17개이고, 2000년에 예정된 계획은 새로운 세기에 대한 전망 2, 지식의 새로운 차원, 발자크, 꽁뜨와 정신분석학, 자서전과 일기, 텍스티크 이론, 대화이론과 텍스트성, 중세작가 라블레, 쟝 쥬네, 로베르 데스노, 메테를렝크, 스티븐슨과 코난 도일, 전쟁과 평화, 철학자 비코, 화가 밀레, 학교와 민주주의 등이다.

  스리지 국제문화센터라는 하나의 토론 공간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한 가족의 삼대에 걸친 마음씀이 있었을까 알아보고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적․지적 풍토도 매년 적어도 42,000원 정도의 액수를 문화센터에 회비로 내는 사람이 1,500명 정도는 가능해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또 한편 우리 문화발전의 방안에 대한 토론이 정부의 지원부족에 대한 성토에서, 어떻게 국민 모두의 문화적․지적 풍토를 변화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지기를 기대한다.